한국일보

독서칼럼 - 참나무의 해거리 전략

2022-08-22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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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에는 열매를 아주 적게 맺고 어느 해에는 많이 맺는 생산량 조절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을 해거리(alternate bearing)라고 한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생명이 달린 주식이다. 참나무에게 도토리는 종족을 번식시키는 종자(種子)다.

참나무는 자신의 소중한 종자 씨앗을 무료로 가져가는 다람쥐의 포식행위를 향해 ‘해거리 전략’을 구사하여 다람쥐의 개체를 통제한다. 어느 해에 참나무는 갑자기 도토리를 많이 맺어 다람쥐에게 풍성한 도토리를 선사한다.

영양 섭취가 많아지면서 다람쥐의 개체 수는 급증한다. 그 다음 해에 참나무는 도토리 생산을 대폭 줄인다. 다람쥐들은 제한된 양식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다수가 영양 결핍으로 쓰러진다. 결국 다람쥐의 개체 수는 평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참나무 군락은 안정을 되찾는다.”
(더글러스 테러미의 ‘The Nature Of Oaks’ 중에서)


참나무(Oaks)의 넓은 번식을 위해 사방으로 퍼져야 할 도토리가 다람쥐에게 가로막혀 다 빼앗기면 참나무 군집은 불안하다. 이때 참나무는 해거리 전략으로 다람쥐와 맞선다. 참나무는 도토리 대풍작을 만든다. 다람쥐들은 좋아 날뛰며 매일 잔치를 벌인다. 도토리를 마구 먹어치운다. 내일을 위하여 자기만 아는 비밀 장소에 도토리를 숨겨놓는 잔머리도 쓴다.

지천에 널려있는 도토리를 아무 노력이나 대가도 없이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그대로 방관하는 것은 참나무의 생존전략 중 하나다. 이것을 ‘포식자 포만 전략’이라고 한다. 포식자 포만 전략은 자연생태계에 도사리고 있는 다람쥐를 배불리 먹여서 종족 개체수를 줄어들게 만드는 고도의 생태교란 전략이다.

이듬해가 되어 참나무는 도토리 생산을 대폭 줄인다. 적어진 양식을 놓고 다람쥐들은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양식이 고갈되면 다람쥐는 참나무 해충인 매미나방 번데기,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그래도 양식이 모자라면 다람쥐가 기아상태로 집단 죽음을 당한다.

참나무가 풍작 해거리(masting)를 작동 시키는 이유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탐욕으로 취하기 때문이다. 풍작 해거리가 이루어지는 해에는 바람을 통한 군집수분(wind-pollination)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풍작 해거리를 통해 참나무는 다람쥐의 씨앗 약탈을 막아낸다.

기억하라. 풍요가 보장되어 있어도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하늘의 힘이 탐욕을 통제할 것이다. 예수는 산상보훈에서 절제의 윤리를 상세히 설파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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