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빙산이론

2022-08-15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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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썼습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고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 독자에게 경험을 전달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것을 없애려고 애썼습니다.”(‘The Paris Review; 어니스트 헤밍웨이’ 중에서)

빙산이론은 헤밍웨이를 노벨상 수상 작가로 만든 ‘노인과 바다’에서 빈번하게 사용한 수사법이다. 헤밍웨이는 빙산이론 수사법을 전개할 때 주인공과 소재를 한 가지로 한정한다. 목표를 향하는 주인공의 시선도 오직 한 가지에 고정되어있다. 위기 상황 중에 나누는 성급한 대화도 거의가 독백이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작은 어촌에 살고 있는 외롭고 가난한 노인, 산티아고(Santiago)다. 노인은 그 어촌에서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유일한 어부다. 노인은 날이 좋은 날을 택하여 습관처럼 또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 날엔 노인의 유일한 친구인 착한 소년 마놀린은 바다로 함께 나가지 않았다.


40일 동안이나 바다에 머물렀으나 노인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어느 날 잠간 잠든 사이에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시 바늘을 삼킨 것을 알았다. 길이가 18피트, 무게 1500 파운드가 나가는 거대한 녀석이다. 노인의 심장은 다시 힘차게 뛴다. 광활한 바다 한 복판에서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와 펼치는 고독한 노인의 분투는 독자를 긴장시킨다.

잡은 청새치 한 마리를 끌고 귀가하는 노인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드넓은 바다, 창대한 밤하늘과 별들과 청새치, 그리고 가끔 노인의 작은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에게조차 노인은 방백(傍白)을 쉬지 않고 늘어놓는다. 이렇게 ‘축약된 단순함의 의외성’이 헤밍웨이가 말하는 빙산이론이다.

단순, 겸손한 성품, 인내와 용기, 따뜻한 이타심, 자연을 있는 그대로 품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 산티아고는 크리스천의 롤모델(role model)이다. 산티아고는 말했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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