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뱃지(Badge)의 무게

2022-07-11 (월) 임일청/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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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주 남부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 사망한 학생들은 7~10세 사이로, 같은 날 불과 몇 시간 전 표창장을 받은 아이도 있었다.

이 사건은 2012년 12월 14일 커네티컷 주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해 어린이 20명과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 6명, 범인인 애덤 렌자와 그의 어머니까지 모두 28명의 목숨을 앗아간 커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다음으로 미국 내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중 가장 희생자가 많은 사건으로 기록됐다.

총기난사로 인해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모든 분들에게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는 바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텍사스 공공안전부 스티븐 매크로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한 내용이다. 그는 경찰 대응이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며 당시 대응은 우리가 컬럼바인 고등학교 대학살 이후 지난 20여 년간 배운 것과는 정반대였다고 밝혔다.


총격범 샐버도어 라모스가 학교 건물에 들어선 지 3분만에 범인을 제압할 충분한 숫자의 무장 경찰 19명이 현지에 배치되었지만 피트 아리돈도 유밸디 교육구 경찰서장은 무슨 이유에선지 경찰의 교실 진입을 막았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과 국경순찰대원의 교실 진입까지 가로막았다. 그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1시간 14분 동안 총격범 라모스는 교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아이들 19명과 교사 2명을 사살하고 자신도 총기로 자살하는 끔찍한 범행을 마음 놓고 벌일 수 있었다.

당시 국경순찰대원들은 12시 15분경 학교에 도착했으나 경찰이 현장 진입을 가로막는 바람에 35분 뒤에야 교실로 들어가 라모스를 사살할 수 있었다.
1999년 4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참사 이후 마련된 경찰의 표준대응지침 - 학교 총격범의 경우 1초도 허비하지 말고 즉각 대응해 사살하거나 체포해야 한다- 은 이번 텍사스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만약 경찰이 발 빠르게 교실로 진입해서 라모스를 제압했다면 많은 이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가 무엇 때문에 경찰의 교실 진입을 막았으며, 부모들과 연방 무장요원의 현장 진입까지 가로막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밖에서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끔찍한 총소리와 총을 맞고 죽어가는 아이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 왔을 터인데 어떻게 그 소리를 들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설사 경찰이 아니었다 해도, 비록 무기가 없었다고 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아이들을 구하러 교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진 경찰관이 어떻게 그와 같은 행동을 저질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일 뿐만 아니라 직무 태만이며 경찰의 표준대응 지침 위반이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법 (Good Samaritan law) 에도 저촉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적과 싸우는 군인들이 적군에 의해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증원군만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군대일까?

군인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전쟁에 나가 싸우듯, 경찰 역시 범죄와의 전쟁의 최전선에서 범법자들과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라고 국가는 경찰에게 뱃지를 수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뱃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이번 유밸디 경찰의 조치는 텍사스 주민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 적지 않은 실망과 충격을 던져 주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없어야겠지만 수정헌법 제2조가 폐지되지 않는 한 미국의 총기사고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안일한 대응조치만은 절대로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임일청/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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