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증오의 풍토병

2022-05-25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유일한 한인 론 김 의원은 지난 선거의 승리로 5선의 중견 정치인이 됐다. 그는 다음 목표로 뉴욕주 감사원장에 도전 의사를 피력했고, 그를 지원하기 위한 한인사회의 후원 활동은 꾸준하다. 롱아일랜드 모처에서 그를 위한 한인 후원행사에서 후원금 2만 달러를 모금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뉴욕주에 또 다른 한인 선출직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한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의 이름도 론 김이다. 그는 업스테이트 뉴욕에 온천으로 유명한 사라토가 스프링스의 시장이다. 탄산온천으로 미 북동부에서 유일한 사라토가 온천은 네이티브 인디언들도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원주민인 이로퀴 인디언들이 이 온천의 약효를 알고 그들의 성지로 보호해 왔다는데, 18세기에 미 대륙으로 넘어온 유럽인들이 이곳을 발견하면서 미 전역의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사라토가는 뉴욕시 부자들이 모여들면서 음악과 미술, 부유한 예술의 도시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곳은 주민의 거의 90%가 백인이고, 동양계는 3%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한인 시장이 탄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곳 신임시장 론 김이 최근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을 조롱하는 gook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gook은 한국이나 중국 등의 나라를 뜻하는 나라, 국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비속어다. ‘국’ 말고도 동양인 비하시 쓰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Chink 또는 Ching Chang Chong ‘칭 챙 총’처럼 우리가 ‘짱깨’라고 흔히 중국인을 폄훼하는 말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을 조롱한 jap같은 단어로 우리의 아이들이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이 코로나의 주범이라는 오해가 퍼지면서 아시안을 향한 인종 차별이 자연스레 확산되는 추세다.
봄 향기 가득한 5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지난 15일 버팔로 흑인지역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10명이 목숨을 잃은 참극이다. 이 사건과 관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종 혐오 범죄를 끝내야 한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8세 백인남성. 마치 10여년 전 발생한 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조승희가 연상된다. 피의자는 범행 전 인터넷에 자신의 입장을 밝힌 180쪽 분량의 선언문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글에서는 스스로를 코너로 몰리고 있는 백인들의 처지를 옹호하는 백인우월주의자로 규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얼마 전 달라스 한인밀집 지역 미용실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과 몇 달 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동양인 소유의 마사지 가게 총기난사 사건과도 유사해 보인다.

다른 것은 이번 용의자는 범행 당시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로 범죄 현장을 생중계해 자신의 범행을 센세이션화 시킨 점이다.

피의자는 "더 많은 흑인을 죽이겠다"고 했다는데, 앞으로 유사한 사건들이 줄을 이을까 두렵다. 이른바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정신병적인 카피캣 전염병 말이다. 당시 검은 피부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에 '증오의 풍토병'이 도지고 있다는 취지의 논평을 했다.

코로나보다 훨씬 무서운 증오의 팬데믹이 드디어 우리 사회를 덮치고 있다. 코로나 공포가 너무 확대돼 사람들의 의식까지 지배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마음의 팬데믹에 대해서는 인색한 지금이다. 이제라도 제2, 제3의 론 김 같은 커뮤니티 리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공포를 이기는 길은 용기밖에 없다.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 위대한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