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반지성주의

2022-05-18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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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400여년동안 지속되었고 그로 인한 희생자는 수백만명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마녀사냥의 타겟이 된 여성들은 악마와 관계를 했다는 누명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아더왕의 전설에 따르면 당시 능력자들로 알려진 연금술사나 마법사들은 악마와 마녀들의 관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후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마녀사냥이 존재했다.

신대륙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주홍글씨’는 군중들이 다수의 목소리라는 이유만으로 법의 집행자가 되어 개인을 몰아세우고 윽박지르는 마녀사냥의 광기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자세한 내용도 고려하지 않은 채 집단의 기분에 따라 타인을 함부로 벌하는 인간사회 불공정의 문제를 다루었다.

중세 교황사회 뿐 아니라 미국 초기의 청교도 사회에서도 다수의 군중이 소수를 억압하는 마녀사냥이 횡행했다. 주홍글씨는 실제 미 북동부에서 벌어진 ‘세일럼 마녀재판 (Salem Witch Trial)’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저자 나다니엘 호손은 실제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 사건에서 20여명의 사형을 선고한 존 호손 판사는 그의 외할아버지였다.


17세기 미국 청교도의 센터인 보스턴으로 네덜란드에서 홀로 이민온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혹독한 마녀사냥을 당하는 줄거리다. 남편이 인디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남편은 2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남편과 연락이 끊긴 채 절망한 주인공은 더 이상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마을의 독신 목사와 사랑을 나누면서 사생아 펄을 출산한다. 졸지에 간통죄의 죄인이 된 그녀에게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가 새겨진다.

이 무렵 미국내 청교도들은 떠나온 유럽과의 사이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고향을 떠나 신대륙에 온 본래의 목적인 신앙의 순수성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골수적인 비타협적 사회분위기는 누구 하나 희생양으로 제대로 걸리면 죽여야 성이 차는 집단적 마녀사냥이라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택하게 만들었다. 비과학적인 종교재판과 집단적 마녀사냥은 반지성주의의 전형이었다.

수백 년 동안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책들은 카톨릭교회가 정한 금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1979년에 이르러서야 로마교황청은 300년 전에 로마 종교재판소가 갈릴레오에게 내린 유죄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갈릴레이는 일반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주제들을 놓고 논쟁을 즐겼기 때문에 논쟁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반골기질은 결국 그를 카톨릭 종교재판까지 받게 만들었다. 그가 학자로서의 양심을 굽히지 않고 교회가 정한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권력상층부의 눈 밖에 나 ‘마녀사냥’을 당하게 된 것이다.

마녀사냥의 핵심은 앞뒤 문맥이나 사실관계의 충분한 확인을 하지 않고, 지성에 기반한 중립을 지키지 않는 행위이다. 진정한 지성주의란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 제3자의 입장에서 잘잘못을 옳게 가리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현대사회의 대세가 되면서 이제는 익명을 이용한 온라인 속에서의 ‘마녀사냥’을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가짜뉴스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21세기판 마녀사냥의 공통된 특징은 증명되지 않은 주장들을 근거로 삼아 소수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 나온 반지성주의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뒤덮인 정보 천국의 세상에 왠 느닷없는 반지성주의냐고 반문한다면 자기만의 편향된 세계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 아닐까. 이제 팬데믹도 끝났다. 인터넷 세상에서 나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시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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