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즈니스 에세이 - 골프 잘 치는 여자를 원합니다

2022-05-04 (수) 헬렌 서/뉴저지 팰팍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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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오후시간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콜 아이디에 생소한 지역번호다. 첫 마디가 “ 모든 것은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다. 음성으로 봐서 꽤 연세가 있어 보인다.
“지금 출발합니다. 약 3시간 걸립니다.”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아니 붙박이 가구도 아니고 상대방의 스케줄은 상관없이,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조금 더 늦게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번쩍 번쩍 빛나는 까만색 벤츠 한 대가 도착하더니 아주 몸이 왜소하고 나이가 지긋한 분이 내리신다. 사무실서 만나자마자 명함부터 내민다. 앞뒤 없이 첫마디가 “골프 잘 치는 여자분을 추천해주십시오. 저는 그 지역 사회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하고서 자기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일주일 안으로 다시 올 테니 연락을 달란다.

아니, 골프 잘 치는 혼자 사는 여성이 뒷집애 이름 부르듯이 쉬운 일도 아닌데 일주일 안에 맞선을 주선하라니, 차라리 높은 산에 올라가 별을 따는 것이 더 빠를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떤 분이 나이는 52세, 세련된 외모를 지닌 여성을 소개했다. 뉴욕에서 하던 비즈니스를 접고 언니 집에서 더부살이 하는 여성, 가진 것은 필수품인 자동차 한 대뿐, 골프는 오랜 경험자라 한다.


드디어 소개하신 분과 골프 여인을 만났다. 솔직하게 상대방 나이, 모양새, 비즈니스를 얘기하니 얼굴에 스쳐지는 그림자는 실망감이다. “사랑 없이 팔려가는 당나귀 신세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본인 의사를 밝히니 그 자리가 불편하여 일어서려는데 미안감 때문인지 잠시 다시 생각해보겠다더니 큰 결의를 한 듯 만나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 사람 인연은 모르는 거지. 빨리 전해야지 하지만 너무 늦은 밤 아니 새벽이라도 꼭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전화를 하니 잠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반색을 한다.
“ 박선생님 ! 드디어 구했습니다.”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 외치니 “아이구!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몇 살이유?”, “52살! 52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조용해지며 아무 대답이 없다. 아니 이 중요한 찰나에 전화기가 문제가 있나, 아니면 너무 감개무량해서 말씀을 못하시는 것인가. 한참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갑자기 360도 돌변한 목소리로, 조금 전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목소리대신 마치 삼베에 풀 먹인 빳빳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아니! 그런 할망구를 해주면 어떡합니까? ”

옛말에 기가 막히면 말문이 막힌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후유증이 꽤 오랫동안 의욕상실감으로 왔다. 인간의 끝없는 과욕, 본인의 직업에 대한 회의, 그래서 인생은 반전이 있다는 새삼스런 진리를 깨달으니 잃어버린 것보다 얻은 것도 있다.

<헬렌 서/뉴저지 팰팍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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