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휴스턴을 잃은 슬픔을 보며 그녀의 삶과 죽음을 찾아보고파”

2022-03-25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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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디든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의 저자 게릭 케네디

▶ ‘디든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의 저자 게릭 케네디

“휴스턴을 잃은 슬픔을 보며 그녀의 삶과 죽음을 찾아보고파”

‘디든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의 저자 게릭 케네디

“휴스턴을 잃은 슬픔을 보며 그녀의 삶과 죽음을 찾아보고파”

팝의 문화적 우상 위트니 휴스턴이 열창하고 있는 모습.


최근에 출간된 팝의 문화적 우상이었던 위트니 휴스턴의 삶을 다룬 책 ‘디든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Didn’t We Almost Have It All)의 저자 게릭 케네디를 영상 인터뷰 했다. ‘인 디펜스 오브 위트니 휴스턴’(In Defence of Whitney Houston)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위트니를 각광을 받는 가수이자 수시로 자신의 정체를 감춰야 했던 여인의 이중적 삶을 살아야했던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트니 휴스턴은 지난 2012년 2월 11일 비벌리힐스에 있는 비벌리힐튼 호텔의 자기 방 욕조의 물 밑에 잠겨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검시 결과 약물 복용 후 자기도 모르게 물속에 잠겨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48세였다. LA 타임스의 팝과 문화 담당기자로 일했던 케네디는 현재 문화 비평가요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LA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케네디는 질문에 큰 제스처와 함께 큰 웃음을 웃어가면서 겸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책을 쓰기 된 동기는.

“나는 기자로서 휴스턴의 리허설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고 비벌리힐튼 호텔에 갔다. 그래서 휴스턴을 만났는데 그 때 휴스턴이 어딘가 정상적인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휴스턴은 그 이틀 후 사망했다. 그 때를 다시 얘기하자니 힘이 든다. 나는 항상 휴스턴을 예술가로서 존경해왔다. 나는 특히 뉴저지주 뉴와크 출신의 흑인 여자인 그가 젊은 흑인 여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인 세상을 바꿔 놓은 것에 대해 크게 감탄하고 있다. 그야 말로 후배 흑인 가수들의 문을 활짝 열어준 사람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그를 잃은 나의 슬픔과 함께 기자로서 그 슬픔을 더듬어 가면서 휴스턴의 삶과 죽음을 찾아가 보겠다는데 있다. 평생을 사랑했고 이어 만났고 그리고 만난 지 이틀 후 사망한 여인과의 관계의 얘기라고 하겠다.”


-휴스턴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휴스턴도 교회를 다니면서 자랐는데 이런 점이 후에 가수가 된 그에게 어떤 압박감이라도 주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책을 쓰면서 한 발은 교회에 있고 다른 한 발은 거친 흑인 동네의 거리에 있는 이중성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다. 폭력과 약물이 판을 치는 곳에 살면서 교회에 1주일에 서너 번이나 가는 이중적 삶을 사는 것이 흑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책을 쓰기 위해 휴스턴이 자랄 때 다닌 뉴호프 교회엘 찾아 갔더니 거친 거리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밖에 나가면 폭력과 약물이 판을 치는 곳에서 살던 휴스턴이 이 교회를 어떻게 피난처로 생각했을까를 상상해보려고 해도 잘 되질 않았다. 휴스턴의 어머니 시시는 교회 권사로 아레타 프랭클린과 함께 노래를 부른 유명한 복음 성가 가수였다. 이런 성장 배경을 지닌 휴스턴은 자기 자신을 솔직히 얘기하려고 해도 자기에게 내릴 사람들의 판단이 두려워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책에서 적고 있다.”

-휴스턴은 생전에 미디어 특히 타블로이드에 의해 무고한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사회 전산망 매체가 번성한 요즘에 살았어도 같은 피해를 입었으리라고 보는지.

“그가 살았을 때 받은 대부분의 비난과 비판은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특히 타블로이드의 내용이 그렇다. 휴스턴이 지금 살아 있어도 사회 전산망에 의한 무고한 비난과 비판과 판단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과거와 다른 점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 전산망으로 그런 비난과 비판을 반박하는 응원자들도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휴스턴이 케빈 코스너와 공연한 ‘바디가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영화는 아름답고 대단한 영화다. 위대한 가수인 휴스턴에 적합한 작품으로

휴스턴은 역을 기막히게 잘 해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90년대 초에 사람들에게 피부 색깔이 다른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또 그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책을 쓰면서 휴스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나는 처음에 책을 휴스턴이 각광을 덜 받던 생애 마지막 10년에 관한 전기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위해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사람들이 그 누구도 휴스턴의 음악과 생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들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휴스턴과 함께 MTV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그리고 마돈나와 데이빗 보위 등의 음악과 생애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 하면서도 유독 휴스턴의 그 것에 대해선 무지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나는 전기로 쓰려고 하던 책을 문화 비평서로 만들기로 했다. 내가 휴스턴에 대해 생각하고 또 말하는 식의 문화 비평서로 쓴 것이다. 휴스턴이야 말로 수많은 비극으로 둘러싸인 눈부신 이야기를 가진 진짜로 큰 스타이다.”

-휴스턴은 죽을 때까지 신심을 간직했는가 아니면 종교에서 멀어졌는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치유해 준다고 믿었다. 휴스턴은 이를 끝까지 믿었다. 내 가족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 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소유했지만 그는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 결정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휴스턴이 부른 노래도 그가 자라면서 교회에서 수 없이 부른 노래 ‘지저스 러브즈 미’다. 휴스턴은 무슨 일을 겪든지 간에 늘 마음속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직하고 있었다.”

-휴스턴은 노래 취입할 때 몇 차례나 반복해 불렀는가.

“모든 노래를 단 한 번에 끝냈다. ‘바디가드’의 주제곡인 ‘아이 윌 얼웨이즈 러브 유’ 같은 빅 히트 곡도 마찬 가지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를 받은 것은 영화를 찍기 5분 전인데 립싱크를 해도 되는데도 그는 이를 거절하고 진짜로 노래를 불렀다. 이 영화가 그의 데뷔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 말로 놀라울 뿐이다.”

-위트니 휴스턴의 노래들 중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잇’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라드인 ‘런 투 유’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업-템포인 ‘이프 아이 톨드 유 댓’ 그리고 휴스턴이 나온 영화 ‘프리처스 와이프’의 노래 ‘마이 하트 이즈 컬링’ 등이다. 그리고 난 그가 부르는 복음성가를 매일 듣는데 노래를 듣고 있자면 하나님과 휴스턴과 내 영성에 보다 가까이 다가감을 느낀다. 이밖에도 내가 좋아하는 휴스턴의 노래는 30곡이 넘는다. 그리고 휴스턴을 통해 브랜디와 마라이아 캐리와 데스트니즈 차일드 등도 좋아하게 됐다.“

-당신의 영성에 관해 말해 달라.

“난 교회에 다니며 자라지 않았다. 가족들이 다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고 기대하는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젊었을 때 믿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그것을 거절해버렸다. 특히 침례교회 신자들로부터 받은 것은 비판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복잡한 생명체로 단순히 흑백논리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내가 속한 집단은 둘 중 하나 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다. 교회에 가고 이렇게 행하라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하라는 대로 하긴 했지만 전연 느낌은 없었다. 그들이 내리는 비판과 판단은 나 같은 동성애자들은 자주 듣는 것이다. 그러나 난 저기 어딘가에 보다 높은 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또 이해한다. 난 어려서부터 외국어 학교에 다녀서 나와 다른 문화와 다른 것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그래서 무언가 높은 힘이 있다는 것은 믿지만 어떤 특정한 하나의 것을 믿지는 않는다. 그리고 난 언제나 완전한 자유를 원했고 그 것의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기를 원했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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