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로마의 휴일’ 개봉 70주년 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러
올해는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오드리 헵번이 첫 주연한 영화‘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의 개봉 70주년이 되는 해다. 단발머리를 한 오드리 헵번은 이 영화에서 유럽 소국의 공주로 나와 로마를 방문 중 몰래 방을 빠져 나와 미국기자 그레고리 펙을 만나 둘이 함께 신나게 자유를 즐기는 연기를 해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로마의 휴일’ 개봉 70주년을 맞아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러(62)를 영상 인터뷰했다. 영화 제작자인 션은 오드리 헵번과 역시 영화배우이자 감독이요 제작자였던 멜 페러의 아들로 어머니에 관한 책‘오드리 헵번,언 엘레간트 스피릿:어 선 리멤버즈’(Audrey Hepburn, An Elegant Spirit: A Son Remembers)를 저술했다. 멜 페러와 오드리 헵번은 톨스토이 저서를 원전으로 만든 ‘전쟁과 평화’에서 공연했다.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션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어머니에 관해 추억하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린 션과 아버지 멜 페러와 어머니 오드리 헵번.
-당신의 어머니는 스타일과 패션과 미모에서만 우아했을 뿐 아니라 마음도 우아했는데 그에 관해 말해 달라.
“어머니가 남긴 유산은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째는 배우 즉 스타였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스타가 아직 존재했을 때의 스타였는데 그러나 스타인 자신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가 맡은 역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신을 특별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보통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패션이라기보다 우아한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패션의 희생물이 아니었다. 패션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우아함의 패션을 창조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어머니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은 생애 마지막에 봉사했던 유엔 국제아동 구호기구인 유니세프 대사였다. 어머니는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아 사망하기 전 5년간 유니세프 대사로서 심신을 다 바쳐 봉사했다. 이 세 가지가 아름다운 피라미드 같은 어머니의 유산이다.”
-할리우드에서 “오, 저 배우는 새 오드리 헵번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느낌이 어떤가.
“나는 또 다른 헵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것이 바로 어머니가 특별난 점이다.”
-어머니는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상을 탔는데 상이 어머니의 생애를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이라도 주었는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선 어머니는 전연 상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상은 뜻밖의 놀라움이었고 또 큰 영광이었다. 어머니는 상을 고맙게 생각했지만 그 것들이 어머니의 생애를 형성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거나 또 영향을 주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신을 투자해 스스로를 만든 사람으로 어떤 역을 찾아 가기보다 역을 자신에게 가져온 사람이었다. 골든 글로브 상은 직업 언론인들이 주는 상이어서 어머니는 자기가 무언가 특별한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왜 ‘로마의 휴일’은 세월과 무관하게 언제나 봐도 새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가.
“각본 때문이다. 그레고리 펙과 나의 어머니는 모두 훌륭했지만 그보다는 마법과 멋으로 채워진 글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로마를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했다. 로마는 이 세상 그 어느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경이를 지닌 곳이다.”
-어머니는 ‘마이 페어 레이디’와 ‘퍼니 페이스’ 등 여러 편의 뮤지컬에 나와 일부 영화에서는 직접 노래도 불렀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이 페어 레이디’는 어머니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영화였다. 어머니는 처음에 노래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마다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다 알다시피 노래는 마니 닉슨이 부른 것이다.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이 영화의 복원 판을 만들면서 어머니가 부른 노래들을 들었는데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가 ‘문 리버’를 부른 것처럼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들을 만 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가 요즘에 만들어졌다면 어머니의 음성으로 부른 노래들을 썼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는 아니었지만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오페라의 고음을 지양하는 대신에 연기와 감정으로 노래와 역을 잘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퍼니 페이스’의 노래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오드리 헵번하면 패션의 우상으로서 특히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모습이 여전히 티파니 보석상의 광고에 등장하고 있는데.
“그렇다. 티파니와 우리는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다. 아직도 티파니 보석상에 관한 글을 쓸 때면 그 영화로 유명해진 헵번과 연결해 쓰고들 있다. 지금도 맨하탄 5번가에 있는 이 보석상엘 가면 헵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도 여전히 헵번의 모습은 전 세계를 통틀어 아름답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특히 10살이나 12살 난 아이들에게 까지도 그는 우아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머니의 사진이 10대들의 방의 옷장에 붙여 놓았던 제임스 딘의 사진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10대들은 어머니에 대해 만화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짐승처럼 본능적이어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가려낼 줄 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그들은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에 대해 무언가 진실한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연기와 표정은 과장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의 그 것과 다른 것으로 모자람이 넘치는 것보다 나은 것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10대들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인류애 탓으로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을 허리를 구부려 들어 안아주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라 진짜 행동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런 일을 위해 몇 달 씩 여행을 했는데 그로 인해 결국 병에 걸렸다. 어떤 면에서 신데렐라 이야기와도 같다. 10대들도 어머니의 이런 인류 사랑을 공감하고 있다.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신 어머니의 가족은 네덜란드 사람들인데 그에 대해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머니의 자신의 네덜란드 가족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때면 모였는데 올 때면 와플과 청어를 가지고들 왔다. 어머니는 네덜란드어를 잘 했지만 구식 언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뿌리를 사랑했다. 자신이 소개하는TV 프로 ‘세계의 정원’ 에피소드 촬영차 네덜란드에 들러 자기 이름을 따 명명한 튤립을 소개하면서 아주 좋아했다. 어머니가 네덜란드어로 말하는 모습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유명 인사 밑에서 자라면서 집에 파티가 열리면 찾아오는 스타와 저명인사들을 많이 봤을 텐데 어떤 기억이 나는가.
“그들은 완전히 보통 사람들이었다. 할리우드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그 중에는 수줍음이 많거나 비사교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반바지를 입은 케리 그랜트나 파티에 잘 차려 입고 온 야마니와 카쇼기도 봤지만 그들은 모두 정상적인 것을 찾는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요즘과는 다른 비싸지 않은 차들을 타고 왔다. 사치스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끄러운 것을 피해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어머니가 스위스에서 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을의 상점엘 들러 물건을 사도 파파라치들에게 쫓기지 않고 보통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 후에는 개를 데리고 포도원을 산책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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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골든 글로브협회(GG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