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은둔과 침묵’

2022-03-21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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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은 이따금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밖으로 넘쳐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모든 생각을 쏟아내는 과도한 글쓰기를 조심하라.“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 중에서)
악성(樂聖) 베토벤의 천재적 음악성은 청력의 상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7살부터 베토벤의 청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44살이 되자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베토벤은 이 후부터 심장병, 당뇨병, 시력약화, 췌장장애의 고통에 시달렸다.

완전한 청력상실이 확인되었을 때 베토벤은 망연자실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소리와 관중의 박수소리를 듣고 환호하는데 베토벤은 아무 감각도 없었다. 베토벤은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48세가 되자 베토벤은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원활하고 정확한 소통을 위해 베토벤은 대화 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평생 사용한 대화노트는 200권이 넘는다. 대화노트의 사용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대화노트가 베토벤과 대화 상대를 오고갈 때마다 노트 여백에 창의적 생각과 악상이 깨알처럼 기록되었다. 청력을 잃고 나서 베토벤은 지휘자의 길을 접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청력을 잃고 건강도 약화된 베토벤은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며 존재론적 문제를 붙잡고 신음했다. 베토벤이 작곡한 곡 중 신앙의 영감이 넘치는 곡이 거의 만년에 쓰여 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력상실이후 베토벤은 주로 집 안에 칩거했다. 집 안에 큰 서재를 만들어놓고 책 읽기에 몰입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위시하여 실러,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칸트, 헤르더를 읽었다.

베토벤은 특별히 루터파 신학자들의 신앙도서를 깊이 섭렵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거듭났다. 1824년 5월 7일 금요일에 초연된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위시한 ‘장엄미사’,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 등은 모두 베토벤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집 안에서 독서하며 은둔하던 중에 작곡된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말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 온전한 작품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자 하는 작업으로 탄생한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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