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소년들에게 예술이 주는 영향은 대단히 강렬”

2022-03-04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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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카사블랑카 비츠’의 나빌 아유시 감독

“청소년들에게 예술이 주는 영향은 대단히 강렬”

‘카사블랑카 비츠’의 나빌 아유시 감독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달동네 문화센터에서 청소년들에게 랩송을 가르치면서 이들로 하여금 가정과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열정을 심어주는 젊은 전직 랩 가수 아나스와 학생들 간의 관계를 힘차게 그린 음악이 있는 드라마 ‘카사블랑카 비츠’(Casablanca Beats)를 만든 모로코 감독 나빌 아유시(52)를 영상 인터뷰 했다. 이 영화는 아유시 감독의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아나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실제의 자신들을 연기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인터뷰에 응한 아유시는 차분한 자세로 담담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청소년들에게 예술이 주는 영향은 대단히 강렬”

모로코 출신 나빌 아유시 감독이 만든 영화 ‘카사블랑카 비츠’의 한장면.



-행동파로 알려진 당신은 이 영화에서 음악을 통한 행동을 표현했는데 음악의 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일찌감치 어려서부터 예술 특히 음악이 변화의 주요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것은 내가 어려서 살던 파리 외곽에 있는 지역의 문화센터 덕택이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온 문화센터와 똑 같은 곳에서 탭댄스와 노래와 악기연주를 배웠고 채플린의 영화도 처음으로 봤다. 나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때에 이 문화센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난 영화감독이 된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받은 것을 젊은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어린 사람들에게 예술이 주는 영향이야 말로 대단히 강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보수주의와 종교가 예술과 사회적 발전의 장애물로 그려졌는데 그 것이 모로코의 실상인지.

“종교가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또 그 것을 잘못 배우면 그 것은 모로코 뿐 아니라 세상 어디서나 사회발전과 예술의 장애물이 된다. 모로코에서는 수많은 이슬람 신자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종교는 예술과 공존할 수 없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이 힙합과 같은 예술을 포기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몸은 전통적 사회에 담고 있지만 문화와 꿈은 힙합과 같은 예술로 지향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은 극심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나도 같은 경험을 했으며 이 영화에서도 그런 면을 보여주려고 했다.”

-각본을 쓸 때 외부와 차단된 채 골방에서 쓰는 스타일인가.

“젊었을 때는 광적이다시피 집념적이어서 글을 쓰고 촬영을 할 때면 나만의 독특한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과거보다 마음 문을 열고 주위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젠 더 이상 나만의 작업 방식이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파리에서 자라 젊었을 때는 유럽문화를 몸에 지녔었다. 그러나 카사블랑카에 오면서 이 나라의 혼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신을 못하고 또 이 곳 문화와 사람들이 당신에게 주는 것에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아주 쉽사리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말기 쉽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주위 환경에 보다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영화들이 거듭 만들어질수록 보다 자유스러워지는 것도 이를 따른 탓이다.”


-자랄 때 꿈은 무엇이었는지. 일찌감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난 어렸을 때 정체성 문제로 고뇌가 심했다. 어머니는 유대인 프랑스 사람이고 아버지는 무슬림으로 난 기독교 학교엘 다녔다. 어려서 장차 무엇이 될 것인지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디든지 한 그룹에 속해야만 했다. 특히 내가 자랄 때 내가 살던 곳에는 많은 그룹들이 있어 그 어느 한 곳에 속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의 갈 길을 그 어느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는데 그 어느 다른 곳이 내게는 문하센터였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지닌 것이 고통이 아니라 무언가 풍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모로코의 정체성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 20세 때 내 정체성을 바라보고 또 스스로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이해하며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들을 찍었다. 난 젊었을 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를 몰랐다. 이 영화가 나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정체성 확인에 시달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두 다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처럼 두 개의 꿈과 두 개의 현실의 사이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그 사이에는 긍정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영화에 나온 젊은이들의 미래에도 많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문화센터를 만나 내 꿈이 이루어졌듯이 그들의 꿈도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은 치유의 능력이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힙합의 가사는 누가 썼는지.

“내가 미국에서 건너온 힙합을 처음 들은 것은 13살 때였다. 그러나 그 것은 문화센터에서가 아니라 거리에서 들은 것이다. 그 때만해도 힙합은 문화센터에서 환영받지를 못했다. 미국의 친구들이자 맏형들인 힙합가수들이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야 말로 당시 우리들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요즘 아랍세계에서 잘 볼 수가 있다. 먼저 튜니지아의 ‘아랍의 봄’에서 찾아볼 수 있겠고 요즘 나이제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노래의 가사야 말로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의 가사를 영화 속의 인물들로 하여금 쓰도록 했다.”

-당신의 종교는 이슬람인가.

“난 무신론자다. 난 어느 종교도 믿지 않지만 신은 믿는다. 나의 종교관은 다분히 신비적인데 난 특히 수피즘 신봉자들과 함께 가끔 의식을 치른다. 그들은 16세기와 17세기에 아프리카에서 모로코로 건너온 음악을 연주하면서 몽롱한 상태에 빠지는데 그 것은 일종의 종교적 삶이긴 하나 교과서적인 종교와는 아주 다르다. 내가 모로코를 매우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곳에는 유대인과 아랍과 무슬림과 아프리카 및 기독교의 유산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난 정통종교가 아닌 그 무언가 다른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당신은 정치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난 일찌감치 내가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따로 나의 정치적 의견을 보여주고 싶어 영화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내 의견과 관점을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난 자랄 때 어머니의 가족 안에서 컸고 휴가철에는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지냈기 때문에 양분된 신원으로서 세상을 보는 나만의 시선이 이었다. 내가 자랄 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세계적 뉴스가 되고 있을 때였다. 난 이 갈등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로 인해 내 안에 있는 정치와 함께 정의와 불의의 개념이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어려서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고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소리를 들려주고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어려서 이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사는 주변인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왜 영화에 대중음악 대신에 힙합을 썼는가.

“힙합이 요즘 아랍 청소년들의 중요한 표현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로코에선 더 그렇다.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은 힙합 얘기만 한다. 아랍 권 내 힙합 팬들은 엄청나게 많은데 내가 힙합이 더 이상 서양음악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에겐 힙합이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표현하는 가장 큰 수단이다. 힙합은 이제 그들의 음악이 되었다.”

-영화 만들고 나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난 카사블랑카의 대서양 가까이 살아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수영을 한다. 그 것이 나의 명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내 여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특히 사람이 없는 조용한 사막을 찾아 영화 만들면서 얻은 긴장을 풀곤 한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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