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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를 석방하라’…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인내의 상징

2022-02-25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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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한인 감독 줄리 하·유진 이·음성 대역 세바스찬 윤씨 공동 인터뷰

‘이철수를 석방하라’…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인내의 상징

감독 줄리 하

‘이철수를 석방하라’…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인내의 상징

감독 유진 이



‘이철수를 석방하라’…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인내의 상징

음성 대역한 세바스찬 윤씨



1970년대 미주 한국인 사회의 큰 관심사요 화제였던 이철수 사건을 다룬 기록영화‘이철수를 석방하라’(Free Chol Soo Lee)가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이씨가 20세 때인 1973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갱두목이 살해되자 전과가 있는 이씨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리고 백인의 신빙성 없는 증언에 의해 범인으로 체포돼 재판 끝에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이씨는 그 후 일간신문 새크라멘토 비의 한국인 심층보도 기자 이경원씨의 기사와 한국인 사회의 석방 운동에 의해 재심을 받고 수감 10년 만에 석방됐다. 다음은 영화 상영 후 있은 한국인 공동 감독 줄리 하씨와 유진 이씨 그리고 영화에서 이철수씨의 음성을 대신하고 그의 대사를 쓴 세바스찬 윤씨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이철수를 석방하라’…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인내의 상징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이철수씨.



-언제 이철수 사건을 알게 되었는가.

“유진과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기자 이경원씨를 통해 그 사건을 알게 됐는데 이경원씨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줄리)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대학교 4학년 때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논문을 쓸 때 신문을 들척이다가 그에 대한 기사를 두 개 정도 봤을 뿐이다.”(세바스찬)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서 이철수의 음성을 대신하게 되었는지.

“나는 현재 네트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칼리지 비하인드 바스’라는 프로에 나오고 있다. 나는 전과자다. 16세 때 수감돼 12년만인 2019년에 출소했다. 그 뒤로 나는 전국을 돌면서 수감자들을 위한 보다 나은 교육에 관한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이 어느 한 토론에 이 영화의 제작자인 수 김이 참석했다. 그 몇 달 후 그가 내게 전화로 이 잊지 못할 기회를 제의하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세바스찬)

-이철수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그를 알았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했는데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이경원씨가 우리의 영화 제작 의도를 듣고 이철수씨 석방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우리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맞아주었는데 그 것이야 말로 하나의 특별 대우였다. 흥미 있었던 것은 그들이 모두 차고나 다락에 이철수씨 사건에 관한 자료가 든 상자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철수씨 사건은 그들 모두의 삶에 있어 놓아버릴 수 없는 지대한 중요성을 지닌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를 믿고 관대한 마음으로 그 자료들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그런 관대함에 대해 영원히 감사할 뿐이다. 그 자료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유진)

“우리는 이 영화를 하나의 속 풀이로 생각했다. 그 동안 못 했던 얘기에 관한 영화의 개봉일 뿐만 아니라 이경원씨를 비롯한 이철수씨 석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간직했을법한 마음 속 깊은 아픔을 풀어주는 속 풀이로 여겼다. 이철수씨가 석방되면서 그의 석방을 위해 애쓴 많은 젊은 운동가들은 기뻐 날뛰었고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후에 여러 부문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투사들이 되었다. 그러나 이철수씨는 석방 후에 사회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마약과 범죄에 다시 빠져들었다. 이씨는 자기 구원을 찾다가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영화가 이씨 석방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카타르시스가 되어주고 또 그들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의 끝맺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을 인터뷰 하면서 그들이 모두 자신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 이씨 석방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맞아 감회에 젖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씨의 석방 후의 삶에 대해서도 매우 정직하고 숨김 없이 얘기들 했다. 그들이 이씨와 관련된 자신들의 삶의 기뻤던 순간과 실망했던 순간에 대해 그렇게 솔직히 말한 것이야 말로 우리에겐 하나의 특권이요 명예로운 일이었다.“(줄리)

-영화는 비극적이면서도 아울러 우리의 정신을 고무시켜주는 면을 지녔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면들을 균형 있게 다룰 수가 있었는지.

“그런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이씨의 얘기를 보는 사람들의 정신을 고무시키는 것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의 얘기는 잊어진 역사다. 그의 얘기는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아시안 아메리칸 학자들도 거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너무나 중요한 역사를 더 이상 파묻어둘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얘기는 비극적이요 가슴을 아프게 하며 또 어려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을 고무시키는 요소도 갖고 있다. 그 얘기는 특별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씨의 얘기는 매우 비극적이지만 우리는 그의 대변자가 되어 왜 그가 자기에게 행해진 불의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에 걸쳐 입은 상처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기를 바랐다.”(줄리)

-왜 이철수씨 얘기가 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한 운동가의 말처럼 이씨의 석방이야말로 시적이요 순진무후한 정화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것은 잠시요 그 후 이씨는 사회적응이 힘들어 몸부림쳐야 했다. 이로 인해 이씨 석방 때 가졌던 시적이요 정화의 순간을 얘기하기가 더 이상 힘들어지면서 그의 역사는 사회의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말았다. 그의 얘기는 당연히 올라야했을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소수계인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하기 위해선 영웅이 필요한데 이철수씨의 경우는 이와 달라 그에 대한 얘기를 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종차별 때문이다. 소수계의 역사는 거의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더욱 중요한 업무이다. 우리는 이씨의 시회적응을 위한 투쟁을 포함해 그의 승리도 축하면서 그의 역사를 보다 풍성한 인간적인 얘기로 만들려고 했다.”(유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씨의 경험에 대해 경청하고 또 그의 석방을 위해 힘쓰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궁극적으로 이씨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으면서 그 역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경원씨는 이철수씨에게 ‘당신은 거리의 건달이 아니라 자기 권리가 침해당한 한국인 이민자’라고 깨우쳐 주었다. 이철수씨의 이런 정치적 각성은 이경원씨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각성을 한 뒤로 많은 운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얘기를 구체화하고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진)

“사람들이 이철수씨에게 끌린 데는 그가 매우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경원씨가 이철수씨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당신은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한가. 당신은 매우 힘든 처지에서도 내면에 친절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라고. 이에 대해 이철수씨는 ‘나는 내 전 생애를 통해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기를 원했다. 나는 늘 혼자였고 사람들이 날 받아주기를 원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원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본다.”(줄리)

-어떻게 하면 이철수씨 얘기를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의 한 갈피 속에 엮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 영화가 단지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의 얘기로 한정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그 것이 이철수씨와 그의 투쟁이 단지 한국계 미국인과 아시안 아메리칸 사회의 범주를 벗어나 보다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것은 자신이 외국인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과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너는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나라에서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투쟁에 관한 얘기다. 이 것은 불의를 겪은 사람들과 정의를 위한 집단의 결집력에 관한 얘기다. 사람들이 철수씨를 단순히 철수씨와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 날 까지도 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하면서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변두리 인간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보아 주기를 희망한다. 그는 출소 후 주변 사회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저질렀지만 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사후인 지금까지도 그를 정의와 인내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나는 단순히 아시안 아메리칸 사회 뿐 아니라 유색인종 사회가 한데 뭉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철수씨가 법정에 들어오면서 미소를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철수씨는 법정에 자기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용감한 표정을 꾸며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 뒤에는 많은 고통과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다. 철수씨가 오늘 살아 있어 자기 이름과 기억에 관한 이 대화를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진정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는 그의 얘기의 한 부분이 된 것을 진정한 특권으로 생각한다.”(세바스찬)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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