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모두의 크리스마스

2021-12-22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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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솔로몬 노섭의 저서 ‘노예 12년’은 그가 자유를 되찾은 후 쓴 책으로, 노예들을 사고파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예를 들면 노예 중개인이 노예를 살 때 노예를 앞뒤로 걷게 했고, 구매자는 노예의 머리와 몸을 돌아보고, 옷을 벗긴 후 더 세밀하게 검사했다. 등에 있는 흉터는 반항의 증거로 간주되어 싸게 팔렸다.

당시 노예는 루이지애나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소유자의 재산이었다. 따라서 주인은 노예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노예는 헌법상의 권리가 없었고 허가 없이 농장을 떠날 수 없었다.

노섭은 구매자가 어머니를 두고 어린 딸만 사게 되었을 때 아이는 어머니의 목에 손을 두르고 어머니는 그녀를 품에 꽉 안았다고 묘사했다. 노예 중개인은 그녀의 팔을 잡고 끌어 당겼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그러자 그는 일격을 가해 그들을 떼어냈다.


남자 노예의 가격은 1,000달러 정도이고 성숙한 여자는 좀 더 싸게 팔렸으며, 10세 정도의 노예들과 들판에서 면화 따기 같은 고된 노동을 담당했다. 하루 노동 분량은 200파운드. 온종일 잠시도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노예들의 오두막은 겨울에는 춥고 비가 새고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허가 없이 물건을 사거나 팔수도 없었고 노예 간 결혼도 항상 주인의 승인이 필요했다. 노섭은 그의 책에서 한 젊은 노예 여성이 허락 없이 이웃 농장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채찍질을 당했다고 썼다. 말 그대로 발가벗겨졌고 속눈썹이 피로 젖었다. 노예가 주인에게 보복할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유롭게 즐기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우리가 실컷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기쁨을 생각하면 노예들이 겪은 고통을 한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흑인노예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있었다고 한다. 이 날은 일단 노예들도 주인으로부터 물질적인 선물을 받았다. 이날 노예들은 아마 연중 내내 맛볼 수 없던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노예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결혼했다. 미 고전문학 작품에 보면 크리스마스이브에 주인에게 결혼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허락을 받으면서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노예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여유와 번영의 시기였다. 노예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저축했고, 어떤 노예들은 크리스마스를 탈출의 기회로 여기기도 했다.

백인 주인들이 주님으로 숭배하고 있는 바로 그 예수는 비천하고 권력자들의 멸시를 받았으나,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노예들에게는 희망을 상징했다. 하지만 축복만 있던 것은 아니다. 소년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새 주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선물 대신 죽을 때까지 구타당하기도 했다.

흑인 지식인이자 영웅이었던 프래데릭 더글러스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노예들이 노리개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누가 취하지 않고 위스키를 많이 마실 수 있는지 내기를 걸었다. 이들의 휴가가 소유주의 이기적인 목적에 봉사하기 위한 것임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1853년 1월, 루이지애나 주 판사는 노섭을 노예의 속박에서 석방했다. 그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노예의 법적 지위가 담긴 수정 헌법 13조는 마침내 1865년 비준돼 미 전역의 노예제도를 폐지시켰다. 그에 따라 크리스마스는 인종을 불문하고 모두가 마음껏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코로나에 오미크론까지 기승을 부려도 지금 맨하탄은 사람들의 발길이 넘쳐나 나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 동족의 자유는 여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북한 인권단체 ‘코리아 퓨치’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교도소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감금돼 있으며 극심한 고문과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아무리 보아도 요원해 보인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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