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가을의 기도

2021-11-09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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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대 머리 위에 한국의 여성 서예가 조경숙 여사의 친필로 적어주신 나의 ‘가을의 기도’가 걸려있다. “남은 세월을/ 어리석은 자처럼/ 두리번거리며/ 살지 않게 하소서/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이런저런 우상에 굴복하지 말고/ 롯의 아내처럼 /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부르심의 소망을 향하여/ 똑바로 걷게 하소서”

나는 나무가 많은 동네에 살고 있어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 조선 반도는 산악지대여서 명산이 많다. 북한의 금강산 백두산 묘향산, 남한의 설악산 내장산 한라산 등 지금쯤 단풍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으리라.

대원군은 나의 고향 황해도 사람을 석전경우(石田耕牛)라 불렀다. 돌밭을 가는 소란 뜻이다. 다소 느리지만 꾸준하다는 좋은 뜻이다. 일에 꾸준하니까 성공률이 높다는 해석도 한다.


단풍잎을 보면 몹시 아름다운데 옛날 가랑잎은 불쏘시개가 되어 자기를 희생하여 방을 덥게 하였다는 어른들의 교훈을 듣기도 하였다. 동요에도 ‘가랑잎’이 있었다. “가랑잎 대굴대굴 어디로 굴러가나/ 헐거벗은 이 몸이 춥고 추워서/ 따뜻한 부엌으로 들어가지요 ”사실 가랑잎은 따뜻한 곳이 아니라 타서 죽어 방을 덥게 하기 위하여 아궁이로 들어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희생이 곧 사랑 그 본이 예수의 십자가라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나의 할머니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나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렸다. 장독대에 냉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린다. 내가 이상해서 “할머니 왜 냉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립니까?”하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하셨다. “신령님이 사람의 정성을 보신다.

샘에서 남들이 물을 뜨기 전에 내가 일찍 일어나서 뜨는 물이 정수, 곧 깨끗한 물로서 나의 정성이 담긴 것이다. 신령님은 나의 정성을 보시거든“ 한국 기독교의 특색이 새벽기도회인데 거기에는 정성이 담겼기 때문에 신이 응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의 오락은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것이다. 상대를 볼 수는 없다. 전 세계 바둑 팬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바둑을 두어보면 상대의 성격 사람됨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정직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과수(過手)를 두는 사람은 욕심장이란 뜻, 이기려고만 급급하는 사람은 경쟁심이 강한 사람, 승패에 큰 관심 없이 여유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인격자이다.

공자님은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 하셨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큰 길을 간다는 뜻이다. 떳떳한 길, 공인되는 길이 대로이다. 곁길, 샛길, 지름길 등은 얼른 보기에 빠르고 좋은 길 같으나 결과가 좋지 않은 길이다. 일본 속담에도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급하다고 지름길을 찾는 것은 실패자 인생이다. 아무리 급해도 정수를 두어야 하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

어려서 내가 좋아하던 이웃 노인이 있었다. 이 분은 젊어서부터 뛰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라톤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소학교 운동회 때 마지막 순서가 학부형 마라톤대회였다. 거기에 이 할아버지가 참가하였다. 저렇게 늙은 할아버지가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다.

다른 선수들은 다 돌아왔는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어른께 물으니 “힘들어서 도중에 기권하고 집에 돌아갔을거라”는 대답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궁금하여 더 기다려 보았는데 내 추측대로 한참 뒤에 혼자서 어슬렁 어슬렁 걸어서 운동장에 나타났다. 정말 존경스런 훌륭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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