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아타운과 홍살문

2021-09-20 (월)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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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은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하는데 ‘붉은 화살 문(Gate with Red Arrows)’이라는 뜻이다. 형태를 보면 좌우 2개의 굵은 기둥을 세우고, 기둥 상단에 그 기둥을 연결하는 2개의 가로대를 놓고 가로대에 일정한 간격으로 화살을 쭉 꽂아 놓았다.

가로대 가운데 부분에는 보통 3지창을 꽂고 3지창 가운데에 삼태극 무늬를 새겨 붙인다. 모든 기둥과 화살은 붉은 색을 칠한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문이지만 그 문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 먼저 홍살문을 붉은 색으로 칠하는 이유는 동짓날 먹는 팥죽처럼 붉은 색이 양기를 띠어 귀신과 액운을 물리치기 위함이며 윗부분을 화살로 장식한 것은 잡귀가 근접할 경우 화살을 쏘아 무찌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짝이 달려 있지 않은 문이지만 그 형상이 ‘문 문(門)’자 모습을 하여 장소의 안팎을 구별하고, 이중삼중으로 신성함을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보호해야할 신성함은 왕의 가계에 대한 존엄함이나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숭고함 또는 일반 백성을 통치하는 근엄함 등이었다. 따라서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에는 홍살문을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와 서원과 같은 교육기관 또는 궁궐 및 관아 등과 같은 관청의 정문에 설치하였다. 원래 홍살문은 인도의 불교문화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그 사리를 보관한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을 스투파라고 했다. 이 스투파는 오늘날의 탑의 기원이 됐는데, 이후 석가모니의 사리가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 옮겨지면서 여러 형태의 탑으로 변형됐다. 어쨌든 이 스투파를 지키기 위한 상징적인 목적으로 스투파의 사방에 토라나를 세웠다. 이 토라나가 동양으로 전파되어 토착의 문화나 종교와 연결되어 한국의 홍살문, 중국의 패루(패방), 태국의 사오칭차, 일본의 도리이 등으로 수용, 변화 및 발전되었다.


홍살문의 원조가 인도 불교의 토라나에서 기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절에 세워진 홍살문은 거의 없다.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 유일하게 홍살문이 세워져 있지만, 이 홍살문도 정조가 비참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비운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한 왕실사찰로 용주사를 지으면서 세운 것이어서 유교적인 의미가 강하다.

한국의 홍살문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증거가 2013년 충남 청양군 칠갑산 산자락에서 발견된, 가로 1미터, 세로 8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이 암각화에는 5채의 한옥 건축물과 함께 오늘날의 홍살문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암각화는 약 1,500년 전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로써 홍살문은 이미 삼국시대에 오늘날의 홍살문과 같은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홍살문에 대한 의식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현실화되어 왕릉, 서원, 향교, 궁궐, 관아 등지에서 활용되었다. 나아가 홍살문은 왕실이나 권력층 또는 사대부 등, 상류층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효심이 지극한 자손 또는 정절을 지킨 여성들에게 국가가 내려주어 그 효심과 정절을 기려 모든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여 일상생활화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홍살문은 한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 그리고 스토리를 지닌 ‘한국인의 문’이다.

라스베가스의 안산자매시립공원에, 경기도 안산시와 라스베가스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세운 철제로 된 조형물이 있다. 메릴랜드 40번 도로 선상에 코리아타운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조만간 완성을 앞두고 있다. 두 조형물 모두 한국을 상징하는 기와를 얹은 문의 모양을 하고 있다. 메릴랜드의 조형물은 단청까지 칠해서 한국적인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문은 아니다. 앞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코리아타운들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문을 세울 때 이왕이면 홍살문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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