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9.11테러 20주기

2021-09-08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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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의 보호국이었다가 1919년 독립을 회복한다. 교통의 요충지였던 내륙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파미르 고원 남서쪽에 있으며, 옆으로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이 나라는 1919년 독립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세운 후, 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간신히 전쟁을 면했다고 한다. 모하마드 자히르 샤샤왕의 군주정은 1973년 7월까지 이어졌는데, 그의 재위 기간이 1933년~1973년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매우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절이었던 것 같다.

왕의 사촌 동생이자 국무총리였던 모하마드 다우드 칸은 비슷한 시기 대한민국처럼 현대화를 주장했지만 왕은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1973년 다우드 칸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공화정 체제를 만들게 된다.


다우드 칸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유사하게 진보 군인들을 모아 혁명을 일으켰고,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진보 군인들은 더욱 급진적인 개혁을 원했고, 결국 급진 공산주의 정책이 지배적인 나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급진 공산주의는 종교를 탄압하고 무신론을 강요하고 그러다보니이슬람 종교 단체들이 거센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아프간 공산당의 요청으로 소련은 신나라 하면서 아프간을 침공했다. 당시 소련과 냉전중이던 미국은 이슬람을 중요시하는 오사마 빈 라덴을 낙점하고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지원으로 탈레반이라는 단체를 이끌며 소련과 투쟁했다. 결국 탈레반은 소련을 물리치고 아프간 정권을 잡는다. 그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자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런데 그가 또 9.11테러 사건의 주역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9.11 사건은 결국 미국의 업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알 카에다 또한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단체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은신하면서 탈레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여튼 미군에 의해 세워진 친미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정작 재건을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개인적 부패와 무능으로 돈을 탕진했고 오늘의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알 카에다와 ISIS, 그리고 탈레반은 결국 이름은 서로 달리 하지만 미군 철수와 복수라는 대의명분에는 한 마음 한 뜻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프간군이 미군이 지원한 방대한 군사 장비를 포기하고 도망쳤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문제의 신호탄이 아닐까.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남긴 군사 자산이 이들에게 몽땅 넘어갔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오래된 반미 동맹 세력은 지금쯤 "힘 빠진 미국을 멘붕에 빠뜨릴 절호의 기회다"라고 환호하면서 테러 기획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근처에서 대규모 폭탄 테러가 발생해 미군 14명과 현지인 최소 17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뒤엉킨 모습의 사진들은 처참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번 테러의 주역인 IS 호라산은 국제 IS의 아프간 단체로 대원은 2.000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에 백악관은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 타국의 전쟁을 무한정 되풀이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것이 또다른 9.11사태를 불러 온다면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응징을 다짐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집단들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면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생각해 보게 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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