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2021-09-08 (수)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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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초현실적이다.”
2021년 9월 5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텔레비전 (Television) 섹션에 실린 ‘그 여자’(탄핵사태 때 클린턴이 르윈스키를 지칭한 표현)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That Woman: Tells Her Own Story’는 제목의 특집기사에 인용된 모니카 르윈스키 Monica Lewinsky가 9월 7일 10회에 걸쳐 방영되는 드라마 ‘탄핵 (Impeachment)’의 최근 시사회에서 반복했다는 말이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이런 저런) 일을 시도해야 한다.”

20대 초반이던 1995년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2년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 맺은 부적절한 관계가 폭로 되는 바람에 클린턴을 탄핵 위기로 몰았던 여주인공이 이제 48세 가 되어 미국 디즈니 계열 유료방송인 FX의 드라마 ‘탄핵’ 의 제작자 프로듀서가 된 그녀가 하는 말이다.


지난 2015년 3월16일부터 닷새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약자) 2015년 회의의 주제는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이었다.

이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 겸 배우 마돈나가 1991년 출연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제목으로 도발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묘사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문제작이다.
뜻밖의 연사도 있었다.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갔던 장본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한국계 강연자도 두 명 있었다. 북한에서 6개월간 영어강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책을 쓴 재미 작가 수키 김(Suki Kim)과 프리랜서 음악가 미나 최(Minna Choi)였다.

흥미롭게도 모니카 르윈스키의 강연 주제는 ‘수치라는 대가(The Price of Shame) ’란 타이틀의 부적절한 저널리즘이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에서‘ 안전하고 더 좀 감성적으로 배려성 있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 환경을 촉구했다.

젊은 날, 내가 신문기자가 되어 받은 저널리즘의 첫 지침이 둘인데 하나는‘개가 사람을 물면 기삿거리가 못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삿거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사에 ‘인간미(human-interest)’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르윈스키 스캔들 와중에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Maureen Dowd)는 그 당시 그녀의 한 칼럼에 ‘제발 나도 좀(Please Take Me)’이란 제목을 달고 자신을 포함 해 만점 매력남 클린턴에게 홀딱 반해 르윈스키의 처지를 선망하는 여성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썼다.

당시의 르윈스키처럼 육체적으로 탐스럽고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가 계속 추파를 던지면서 유혹하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을까.

그 더욱 흥미진진 했던 것은 그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클린턴을 맹렬히 비난하며 탄핵을 주도했던 뉴트 깅글리치, 밥 리빙스턴, 헨리 하이드, 에이사 허친슨 등 공화당의 지도자들이 클린턴 보다 더 심한 외도를 한 사실 아니 진실이 폭로돼 만천하에 공개되었었다. 성인잡지 ‘허슬러(Hustler)’ 창업자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공화당 정치인들이 외도한 물증을 제시하는 여성에게는 미화 백만달러씩 주겠다고 하자 줄줄이 여성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영어에 ‘Perception is reality.’란 표현이 있다. 의역하자면‘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인간사에 있어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진실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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