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묻는다.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모두 보시한다면 그 사람이 지은 공덕이 과연 많겠느냐?” 수보리가 답한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한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네 구절(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면 그 복덕은 저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훨씬 클 것이다. 수보리야, 왜냐하면...”
우리말로 풀어놓은 금강경 제8품 의법출생분의 핵심은 이처럼 쉽고도 선명하다. 한역본 원문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사구게를 남에게 전해주기 이전에 내것으로 소화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특히 한문에 밝지 않은 이들에게는.
위에 인용된 부분만 해도 그렇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所得福德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 勝彼 何以故 須菩提... 띄어쓰기도 돼 있지 않은 한역본을 보면서 뜻풀이는 고사하고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소득복덕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약부유인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 승피 하이고 수보리...” 하고 읽어낼 이가 몇이나 될까. 불교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들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 역시 한문일색 경전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한역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부처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빨리어 성전을 곧장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한 것을 1700년 한국불교사 최대사건으로 꼽는 주장(출처: 2008년 5월 부처님오신날 맞이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의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회장 인터뷰)까지 나온 까닭은. 부처님 가르침은 왜 쉬웠는지 왜 쉬웠어야 하는지 쉬이 이해될 것이다. 고대인도 당시 경전 등 성스러운 가르침은 문자(주로 군사적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가 아니라 암송에 의해 전승됐기에 읽어서 아는 게 아니라 들어서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한다.
한문 이전에 한자 실력이 변변찮아 벽에 부닥칠 때마다 실력 모자람을 한탄하면서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설마 한역된 경전에서처럼 난해하고 현학적인 말씀으로 가르침을 펴셨을까 하는 의구심을 접지 못했던 이들에게, 빨리어 직역 부처님 가르침을 듣거나 읽는 건 어둠 속의 빛 같을 것이다. 담마빠다의 몇 구절을 예로 들자.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 혀가 국맛을 알 듯이” 이 얼마나 쉽고도 절묘한 비유인가. “어쩌다가 못된 짓을 했더라도 착한 행동으로 덮어 버린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인가.
그런데 이를 한역된 법구경대로 過罪未熟 愚以恬淡. 至其熟時 愚人盡形壽 承事明知人 亦不知眞法 如杓斟酌食(과죄미숙 우이염담 지기숙시 우인진형수 승사명지인 역부지진법 여표짐작식) 智者須臾間 承事賢聖人 一一知眞法 如舌了衆味(지자수유간 승사현성인 일일지진법 여설료중미) 人前爲過 以善滅之 是照時間 如月雲消(인전위과 이선멸지 시조시간 여월운소) 이렇게 접했다면? 더듬더듬 읽는 것 자체도 버거웠을 뿐만 아니라 스님이나 해설서의 도움 없이는 지금까지 저 쉽고 감동적인 뜻조차 몰라 헤매고 있을 것이다.
하여 빨리어에서 우리말로 직역된 부처님 말씀을 듣거나 읽으면 부처님은 물론 초기경전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데 앞장서온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밖에. 초기경전 연구의 선구자 고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 교수)와 제자들(붓다나라 대표 이중표 전 전남대 교수, 불교평생교육원 마하나와 아슈람의 책임교수 최봉수 박사, 정신과 의사 전현수 박사 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 일아 스님, 현진 스님, 각묵 스님, 대림 스님 등등등.
마침 북가주 등 미주지역 불교계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이중표 박사가 바싹 움츠린 코로나시대에 맞서 설립한 온/오프라인 겸용 붓다나라 미주지부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경전 강좌를 펼치리란 소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19일자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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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