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 - CDC와 플로리다의 샅바싸움

2021-08-04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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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던 작년 3월 14일,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떠다니는 배양접시’라고 여론의 질타를 받던 크루즈선들에 대해 운항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로부터 1년 정도 지난 올해 4월 초, CDC가 코로나-19방역조건을 갖춘 선박에게만 운항금지 명령을 해제해주겠다고 발표하자 플로리다의 론 드샌티스(Ron DeSantis) 주지사는 CDC가 유독 크루즈 업계에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면서 연방정부 상대로 크루즈 여행 관련 제한해제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접수한 플로리다 연방지방법원은 CDC의 명령은 각 주와 지방정부의 권한을 무시하는 월권행위에 해당한다며 드샌티스 주지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작년 다수의 크루즈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까지 발생한 이후 크루즈 회사들이 나름대로 많은 자구 노력을 기울여 방역대책을 개선했음에도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조치였다는 게 가처분 판결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 판결에 따라 CDC의 조건부 운항허가 명령은 실효될 위기에 몰렸으나 얼마 전 7월 18일, 제 11항소법원에서 하급심의 결정을 보류하는 1쪽짜리 판결문을 긴급하게 마련해준 덕분에 일단 CDC로선 급한 불을 끄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팬데믹 바로 전 해인 2019년, 미국 크루즈 관광산업의 시장규모는 무려 251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할 정도로 효자 사업 중 하나였다. 이 중 플로리다 한 개 주에서만 1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으로만 77억달러(약 9조억원)를 지출했다고 하니 미국 전체 크루즈 시장에서 플로리다주가 차지하는 비중을 가히 짐작할만하다.

이처럼 드샌티스 주지사로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1992년에 설립된 CDC는 연방기관이라곤 하지만 미국 보건복지부의 한 산하기관에 불과하여 코로나-19 이전에는 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력해 보이는 작은 기관에서 어떻게 공룡처럼 거대한 크루즈 업계의 숨통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걸까?

이 막강한 파워의 배경에는 미국헌법 1조 8절의 통상조항(Commerce Clause)과 필요적절조항(Necessary and Proper Clause)이 있다. 미국 연방의회의 권한을 규정한 이 두 개의 헌법 조항을 통해 연방의회는 각 주가 외국이나 다른 주, 또는 인디언 부족 등과 통상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규제나 적절한 법률제정권을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연방의회는 통상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전염병 관련 규제 권한을 보건복지부에 위임하였고, 바로 CDC 가 이 담당이다.
하지만 아무리 연방법이 상위법이라고 하더라도 각 주에 터잡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체로선 연방법과 주법이 상충할 경우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입장 정리가 쉽지 않다.

그 한 예로 지난 6월, 팬데믹 시작 이후 미국에서 출항한 첫 크루즈선인 ‘셀레브리티 에지’(Celebrity Edge)호는 플로리다의 포트 로더데일(Fort Lauderdale)항에서 ‘승무원과 승객이 95% 이상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CDC 요구 조건과, 플로리다 주에서 통용되는 예방접종 증거요구 금지법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한참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왜냐하면 백신 여권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플로리다주 법에 따르자면 승객의 95% 이상이 백신 접종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기지를 발휘한 크루즈 선사는 접종 여부를 알리길 거부하는 승객에게는 백신 여권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CDC의 권고사항인 선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별도 숙소배정, 코로나-19 검사비 부과 등의 절차를 추가하겠다고 압박하자 이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기 위해 99%에 달하는 승객들이 자발적으로 접종 여부를 신고했다고 한다. 미국이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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