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신비한 꿈

2021-08-02 (월)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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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때때로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어떤 계시나 예고처럼 우리가 밤에 자다 꿈꾼 대로 같은 일이 생시에 일어날 때 말이다.

가족 형제나 친구 중 그 누가 꿈에 나타나면 그 사람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된 일이 있었고, 딸 셋이 영국 맨체스타에 있는 음악기숙학교에 다닐 때 나는 미국 뉴욕에 있었는데 꿈에 애들을 본 다음 날 애들 편지를 받곤 했었다.

또 하나 비근한 예를 들자면 1984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자동차 타이어를 눈이 와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 ‘all-season’ 타이어로 바꿔 끼운 지 며칠 안 돼 그해 처음으로 눈이 많이 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자동차의 속도가 나지 않아 눈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계속 차를 몰았다.


한동안 가다가 차가 몹시 덜컹거리기 시작하길 래 나는 길옆에 차를 세우고 보니 오른쪽 뒷바퀴가 공기압이 모자란 채로 굴러온 탓에 타이어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그래서 임시로 스페어타이어로 바꿔 끼우고 타이어를 산 시어즈 백화점 자동차 부품 파는 데로 가서 새것으로 교환했다.

그 전날 밤 꿈에 내가 며칠 전 새로 사 신은 구두 오른쪽만 갑자기 다 닳아 해어져서 신발을 산 구둣방에 갖고 가 새것으로 오른쪽만 바꿨었다.
이와 같은 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체험해왔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도 신비롭고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을 꾼 적도 있다.

1986년 말 나는 굉장히 높은 산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산꼭대기 정상까지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밑에서 받쳐주고 밀어주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그리고 이 등산 등정 코스 내내 아주 작고 예쁜 허밍버드( Humminbird ) 벌새 한 마리가 내 얼굴을 마주 보고 미소 짓듯 노래하며 마치 꿀을 먹고 꽃가루를 매개하는 꿀벌처럼 윙윙 내 눈앞에서 제자리걸음 아닌 제자리 비행으로 나를 인도해 주는 꿈이었다.

이 꿈은 지금도 내 기억에 너무나 생생하다. 공교롭게도 이 꿈은 내가 내 큰 딸 해아 (海兒A)가 만 18세가 되는 1986년 11월 27일 쓰기 시작해서 내가 만 50세 되는 1986년 12월 30일 장문의 편지를 끝맺은 날 밤에 꾼 것이었다.

나는 첫 아이로 쌍둥이 딸을 보았었다. 쌍둥이여서인지 체중 미달로 낳자마자 조산아 보육기 인큐베이터에 들어갔고,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한 아이는 숨지고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 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두 딸 애들 이름부터 지어놓았었다.

한 아이는 태양처럼 언제나 빛나고 만물을 육성하며 희망을 주는 아이가 되라고 태양 ‘해’ 자(字, 아이 ‘아(兒)’ 자(字) ‘해아,’ 또 한 아이는 바다처럼 무궁무진한 삶의 낭만이 넘치는 아이가 되라고 바다 ‘해(海)’ 자, 아이 ‘아(兒)’ 자(字) ‘해아(海兒)’로.
아마도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숨진 ‘해아’가 내 꿈에 벌새로 나타났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밤에 자면서 꿈꾸는 동안은 꿈인 줄 미처 모르다가 잠에서 깨어날 때에라야 꿈이었음을 알게 되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삶이 또한 꿈이었음을 알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면서 꿈꾸는 동안에도 더러 어렴풋이나마 모든 것이 한갓 꿈속의 일인 줄 알게되는 수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 삶이 어떻든 간에 또한 꿈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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