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군함도와 졸페라인

2021-07-2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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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유네스코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결정문을 발표, 일본이 한국인 등이 강제 노역한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는 세계유산위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6년 전인 2015년 6월 일본의 하시마, 이른바 군함도 등 7곳의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을 포함한 23곳의 메이지 산업혁명 근대산업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나가사키 시에 소속된 섬 2군데 중 하나는 나카노시마, 다른 하나는 하시마이다. 군함 모습같이 생겨서 군함도라 불리는 이곳은 일제하의 조선인 600명이 해저의 석탄을 캐기 위해 강제노역 했던 곳이다. 석유로 인해 석탄이 도태되면서 1974년 폐광되고 섬 주민들도 모두 떠나 지금은 폐허가 된 고층건물만 남아 있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가 현지 조사를 벌인 결과 일본은 근대산업 유산 등재시설을 자랑하며 유적지에 올리기에 급급했을 뿐 이곳에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로 수용되어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쏙 뺀 것이다.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 안내와 희생자를 추모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했다.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와 멀리 떨어진 도쿄 신주쿠에 설립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징용자 학대가 없었다‘ 는 역사왜곡 주민 발언과 자료들만 전시한 것이다.

한편, 독일 북서쪽 에센시 노르트라인 베스트 팔렌 주에 독일 최대의 탄광지대였던 졸페라인(Zollverein)이 있다. 1847년 설립된 이래 1851년부터 1986년까지 ‘ 검은 황금’ 이라 불리는 석탄의 제조지설을 갖춘 유럽 최대의 탄광으로 독일 산업혁명의 중심지다.

5,000명의 광부들이 일하던 이곳은 석탄과 철강산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1986년 폐광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2001년 근대 독일공업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졸페라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문화유산 지정은 쉽지 않았다. 졸페라인 탄광은 나치의 전쟁 수행을 위해 전쟁 포로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한 곳이기에 주변국들이 반대했다. 당시 독일은 강제 징용사실을 인정하고 정확하게 그대로 알리고 보여줌으로써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작년 1월27일에는 졸페라인에서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아 ’생존자-홀로코스트후 삶의 얼굴‘ 사진전이 열렸다. 생존자 75명의 얼굴 사진이 졸페라인 탄광지대를 방문한 관람객들을 맞았던 것.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내국인이 훨씬 많은 것은 물론 독일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거울삼아 계속 반성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고가철도, 석탄 세척공장, 육중하고 거친 철골 구조물이 문화공간과 박물관으로 변했고 광부가 사용하던 의자, 점퍼, 모자를 유리진열장에 소중히 진열했다. 졸페라인은 문화도시로 재생되어 연간 25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한국의 태백을 비롯 탄광 지역도 이곳을 모델로 도시 재생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후 폐허화된 콘크리트 건물과 공장이 그대로인 군함도 일대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안내소와 안내책자 어디에도 ‘강제동원’ 이란 단어는 없다. 독일은 완전 시침을 떼는 일본과 달리 ‘강제노역’ 단어를 역사관에 새겼다.

거짓을 일삼는 나라를 상대하려면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민간업체와 해외한인들은 SNS 등을 통해 진실된 역사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유네스코의 이번 결정문은 일본이 세계유산위의 요청과 앞으로 보완될 보존현황 보고서를 내년 12월1일까지 제출하도록 권고했다. 이번에는 일본이 상당한 압박을 받아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따르기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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