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교화와 응보 사이

2021-06-23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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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1일 중년의 아시안 여성이 뉴욕 맨하탄의 차이나타운에서 길을 걷다 갑자기 날아온 괴한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현장 목격자의 핸드폰 영상을 통해 48세 노숙자 알렉산더 라이트(Alexander Wright)를 용의자로 체포했는데 조사결과 이 사건은 아시안 상대 증오범죄가 아닌, 라이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로 보인다고 더멋 셰이(Dermot Shea) 뉴욕시 경찰청장은 발표했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라이트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크고 작은 폭행과 방화사건 등으로 10번 넘게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는 사건 발생 며칠 전 5월27일 맨하탄의 형사법원에서 올 초에 저지른 다른 2건의 폭행 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는데 이 사건 역시 행인 폭행과 교통경찰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죄질이 좋지 않고 동종전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는 단지 5일짜리 단기 교화 프로그램 이수 명령만 내려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자초했다.

다른 한편에선 라이트처럼 정신질환을 가진 범죄자들에겐 감옥 대신 병원치료 등 보다 특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동정 여론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210~230만명의 수감자 중 15%~20% 정도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는 2016년 LA 카운티를 비롯 시카고의 쿡 카운티 교도소, 뉴욕시의 라이커스 섬(Riker’s Island) 교도소에는 각각 교도소 소재 주의 제일 큰 정신병원보다 더 많은 정신질환자가 수용돼있다고 논문을 통해 주장하기도 했다.

정신질환 수감자들은 교도소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해 다른 재소자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할뿐만 아니라 출소 후에도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해 곧 재범을 저지르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는 일도 허다하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수감생활로 인해 경미한 증상이 더 악화되어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점이다. 한 예로, 22살의 칼리프 브라우더(Kalief Browder)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가방을 훔쳤다는 죄명으로 악명높은 뉴욕시의 라이커스 교도소에 투옥된 후 3년 동안 재판조차 받지 못하다가 검찰의 일방적인 기소 취하로 석방은 되었지만 우울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결국 2015년 극단의 방법을 선택했다.

흔히들 응보(retribution)와 격리(incapacitation), 예방(deterrence)과 교화(rehabilitation)를 형벌의 4대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죄를 아예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단지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감옥에 가둔다는 것은 인권차원에서 가혹할 뿐 아니라 그들이 겪는 더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고려할 때 다른 정상인 범죄자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현재 라이커스 섬이 속해 있는 퀸즈 출신 제시카 라모스(Jessica Ramos) 뉴욕주 상원의원은 ‘감옥이 아닌 치료’(Treatment Not Jails Act) 법안을 발의해놓고 있긴 하다. 이 법안은 이름 그대로 정신질환자들을 재판과정에서 걸러내 교도소가 아닌 치료 프로그램으로 교화하고 재범 방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법안 통과까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 라이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정신질환자에게 필요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법원에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치료 프로그램을 남발하는 것은 아닌지, 아울러 프로그램 이수에 실패한 범죄자들이 수감생활을 감수해야 한다고 볼 때 교도소 내에서 정신치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대책이 필요하다.

또 이들의 범죄행위로 인해 신체나 재산상으로 큰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는데도 범죄자에게 단지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응보를 감면해준다면 국가의 사법적 권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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