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무덤 속의 위치

2021-06-21 (월)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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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인이 묻는다. 미국의 묘 속은 3층으로 돼 있다. 시아버지가 몇 년 전에 죽었다. 남편이 얼마 전에 죽었다. 시아버지는 맨 아래, 그리고 남편은 시아버지 위에 매장되었다. 문제는, 자기가 죽으면, 제일 위에 매장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의 몸으로 시아버지와 남편 위에 자기의 몸이 놓여있다는 게 뭔가 꺼림칙하고 불경(不敬)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미국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해 전연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여인은 이런 일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녀는 한국에서 자랐기에, 또한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시아버지를 존경해주어야 하고, 그리고 남편도 존경해주어야 하기에, 자기가 맨 밑에 놓여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말한다. 여자 시신이 남자 위에, 더군다나 시아버지 위에 놓여있다는 것은 유교 입장에서는 상스럽고 무례한 일로 여겨진다.


미국은 유교 국가가 아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다. 미국은 남녀동등이다. 그녀는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인간의 영혼을 중요시 여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가버린다. 시체는 영혼이 없는, 영혼이 비어있는 하나의 물건이 돼버린다. 영혼이 없는 시체는 남녀 구별이 없다. 어느 물건(시체)이 위에 있든, 혹은 아래에 있든 상관치 않는다.

미국은 돈을 중시하고 또한 아주 실용적인 나라이다. 한 조각의 땅이 있으면, 여기에다 고층건물을 짓는다. 수많은 사람이 살도록 한다. 아래층에 여자가 있던 말건, 위층에 여자가 살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 조금만 땅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게 미국의 실용주의이다.

건물 말이 나와서 한 마디 하겠는데, 왜 이조시대에 이층·삼층 건물이 없느냐고 어느 교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조시대에는 왕이 최고다. 왕 위에 보통 사람이 걸어 다닌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왕궁에 이층이 없었다. 그 이유는, 왕이 아래층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왕의 머리위로 위층에, 하녀들이 청소를 한답시고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반사람에게는 궁전보다 더 큰 집을 짓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는 묘는 한 구만 매장되게끔 돼 있다. 어느 시신이 위에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땅덩이가 좁은 나라에 묘 하나에 시신 한 구만 들어가니, 묘가 차지하는 땅덩이가 아주 넓다.

그런데 미국은 묘가 3층이다. 한 묘에 3명의 시신을 묻으니, 땅도 절약되고 또한 묘지 측에서는 돈을 더 벌 수 있어 좋다. 아주 실용적이다.

불교에서는, 주로 화장을 해버린다. 인간이란 인연 따라 만들어졌고, 그리고 인연 따라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변치 않는 실체가 없다. 무아(無我)이다. 무아이기에 ‘나’는 공(空;없음)이다. 살아 있어도 공이고 죽어있어도 공이다. 시신이 어디에 있던 개의치 않는다.

필요한 것은 명복(冥福)이다. 명이라는 것은 저 세상이고, 저 세상에서도 복은 필요하다. 그래서 죽은 이들을 위해서 명복을 빌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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