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Vigilante’

2021-05-12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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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gilante’란 단어는 자경단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발음은 '비질란테‘가 아니고 ‘비질랜티’인데, 공권력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자체적인 치안 유지를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마련하는 경비체제를 말한다.
1992년 LA폭동 때 실제로 수많은 한인 상인들이 이와 같이 자신들의 안전을 총으로 지켜낸 역사가 있다.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에서도 흑인지역에서 비스니스를 하는 한인들이 난무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범죄를 막아내기도 했다.
브루클린한인회, 브롱스 상인번영회, 자마이카 상인번영회 등등. 지역별로 비상연락망을 설치하고 문제 발생시 이를 통해 업소간에 연대와 협력을 꾀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반대로 흑인 의적들이 한인 가게를 지켜준 역사도 있긴 하다.

뉴욕에서 발생한 정전사태 때 범죄가 횡행하자 한 한인 업소는 흑인들이 침입한 폭도들을 막아내 오히려 화를 면한 케이스다.
업주가 평소 지역내 흑인들을 고용하고 흑인 종업원을 학교에 보내주고 흑인이 밀집한 이 지역에 평소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결과다. 그렇지 못한 한인 업소들은 다 피해를 입었는데, 이 가게만큼은 가게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뉴욕한인사회도 한인이건 타인종이건 어떤 식으로든 한인 커뮤니티를 지켜줄 비질랜티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도처에서 한인들이 아시안에 대한 증오심에 희생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 비질랜티 중에는 ‘의적 일지매’가 있었다. 그는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고 그 자리에서 매화나무 한 가지의 그림을 두고 사라지는 마치 소설같은 인물이다.

일지매는 부당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를 구현했다. 소설가 정비석의 소설 ‘의적 일지매’에는 임진왜란 동안 나라에 반역하여 불의의 재물을 모은 자들을 일지매가 직접 응징하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임꺽정 역시 불의를 타파하는 의적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정의를 위해 살았던 의적 하면, 임꺽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 말에 상영된 ‘임꺽정’ 영화를 보며 느낀 통쾌한 감동을 기억하는 한인들도 있을 것이다. 조선전기 항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 무장대 반란의 주모자 임꺽정은 의적으로 그려지지만, 실은 아버지가 백정이라 마을 사람들이 홀대하여 동네 우물물도 먹지 못하고 컸다고 한다.

서양에 비질랜티 하면, 로빈 후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잉글랜드 민담에 등장하는 로빈 후드는 60여명의 동료 호걸들과 불의한 권력에 맞서 가난한 이를 돕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미국에서 자란 어린 2세들은 로빈 후드는 약한 사람의 돈을 뺏는 귀족을 혼내주고 다시 가난한 백성에게 돈을 나눠주는 영웅으로 배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도 훗날 자라서 로빈 후드처럼 정의의 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줄 정의로운 사람들은 어디고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증오와 분노심에 불타 약자를 폭행하는 사람들만 도처에 난무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다시 세상 속에 들어와 정의를 위해 사는 일지매로 변신하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비즈니스가 파괴돼 살길이 막막한 이들을 돕는 정의의 사자들은 다 어디에 숨었나.

바라건대, 정의로운 비질랜티가 곳곳에 나타나 영웅처럼 약자를 돕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런 아름다운 사건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암울한 사회에 실천적인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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