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웨체스터 이야기-1년 만의 식당 나들이

2021-04-12 (월) 노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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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1년 만에 미시즈 리와 함께 식당에 갔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팬데믹을 맞이한 미시즈 리는, 모든 것을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꼬박꼬박 따라했다. 절대로 급한 일 이외의 외출은 하지 않았고, 식품점을 가야 할 때에는 꼭 마스크를 썼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서 있다가 집에 오면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었다.

미시즈 리의 자녀들도 손자 손녀를 데리고 집에 오면, 집안에는 절대로 안 들어왔으며 아이들은 뒷마당에서 놀았고, 식사도 데크에 차려 놓고 멀리 떨어져 앉아서 했다.
나이로 봐서는 백신을 맞을 차례인데도 백신을 맞지 못했기에, 얼마 전까지도 계속해서 모든 일에 철저하게 CDC의 가이드를 따라 제한된 생활을 해왔다.

사람들이 답답함을 못참고 파킹장에 친 천막 식당에도 갔지만, 미시즈 리 부부는 아무데도 안가고 묵묵히 온라인으로 교회 예배를 보며, 친지들과는 부지런히 카톡으로 소통하면서 팬데믹을 견디어 냈다. 본 받아야 할 모범 시민이다.


드디어 두 번째 백신을 맞고는, 혹시 많이 아프면 어떻게 하나 타이레놀을 준비해 놓고 걱정을 했는데 수월하게 지났다고 좋아했다. 그리고는 2주가 지난 다음에야 비로서 식당에서 점심을 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미시즈 리는 나와 만날 약속을 하고 나서는 혹시나 비가 올까 갑자기 또 추워 지지나 않을까, 제발 날이 좋기를 기대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만난 날은 따듯한 날씨에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허드슨 강가에 점심 먹기에는 100점의 날이다. 식당 이름도 ‘반달, Half Moon’. 낭만적이다.

집에서 한 10분, 20분만 가면, 강가 식당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웨체스터에 사는 장점 중에 하나다. 더구나 아무리 멋지게 차린 강변 식당이라고 해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가끔씩 가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더욱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창가에 자리 잡은 미시즈 리와 나는 잠시 감회에 젖을 수 밖에 없었다. 1년 만에 식당에 온 것 보다는 미시즈 오 생각을 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40년전 미국에 온 초기부터 나이 차이에도 불구 하고 가깝게 지낸 미시즈 오와 미시즈 리 우리 셋은 봄 가을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각자의 빽빽한 일정에도, <하프 문>, <레드 햇>, <하베스트 언 허드슨>, 등 뉴저지 절벽과 맨하탄의 스카이 라인이 보이는 강가 식당에서 만나 밀린 이야기를 풀어 내곤 했었다. 그런데, 미시즈 오가 작년 코로나 락 다운이 되기 직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스크를 쓴 것 이외로는 예전과 다름없이 밝고 친절한 웨이트리스가 메뉴 판을 놓고 가자, 우리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 봤다.‘아유, 값이 참 많이 올랐네요.’

팬데믹으로 비즈니스가 어려운 식당들이 가격을 올리는 것에 억하심정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식당 문을 열어준 것 만해도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같은 서민들이 어떻게 쉽게 식당엘 갈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22달러짜리 런치 스페셜 샌드위치와 20달러짜리 샐러드 그리고 6달러씩 하는 식후 커피, 텍스에, 아무래도 후하게 줘야 마땅할 것 같은 팁까지… 평소보다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나왔지만, 그래도 바로 눈 앞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은 팬데믹으로 겹겹히 쌓인 갑갑함을 시원스레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노려/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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