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가톨릭 대통령 바이든

2021-02-08 (월)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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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20일 미합중국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하기 두시간 전 워싱턴의 세인트 매튜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였다. 전통적으로 개신교의 강세가 두드러진 미국에서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되기는 케네디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이 두 번째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가톨릭에서 죄악시 하고 있는 임신중절이나 피임, 이혼, 동성간의 결혼 등 민감한 이슈에 관해서는 유연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의 가톨릭 신앙은 성이나 젠더문제보다는 빈곤퇴치, 환경보호, 친이민 정책, 전국민 의료보험 등 인도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가톨릭이 한국에 전래된 경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서양의 선교사를 통해 전파된 동양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의 천주교는 18세기 중엽 북경을 왕래하던 관리와 선비들에 의해 서학과 함께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천주교는 가난과 무지와 부패한 관리의 학정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다가왔다. 남녀노소 반상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였다.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던 조선은 처음에는 천주교를 묵인하였으나 신자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자 만민평등 사상을 고취하는 천주교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는 조선과 청국을 오가며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참수를 당하였다. 모진 고문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지금은 한국땅에 천주교 신앙이 뿌리를 내렸다. 편향된 사상을 가진 일부 정치사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천주교 성직자들은 묵묵히 봉사하며 국내는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신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어둠 속의 빛이 되고 있다.

미 동북부에 최초의 한인성당이 생긴 것은 1972년의 일이다. 1970년대 초 본격적인 미국이민이 시작되면서부터 한인성당의 설립이 절실해지자 때마침 미국에 유학중이던 박창득 신부가 1972년 12월에 뉴저지에서 30여명을 대상으로 최초의 미사를 올린 것이 미동북부 한인천주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박창득 몬시뇰은 2015년 9월18일 선종할 때까지 10여명의 성직자들을 키워냈으며 이들을 통해 오렌지 성당(현 메이플우드 성당), 새들브룩 103위성당, 마돈나 성당, 데마레스트 성당 등 여러 한인성당을 설립하여 한인 천주교회의 기반을 다졌다.

한인 가톨릭 교회가 이민생활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신심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힘이 되어준 것은 물론이다. 고 박 몬시뇰은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앞장 서 3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위한 국수공장을 설립하는가 하면 나진 선봉지구에 유치원을 지어 500여명의 북한 어린이들에게 하루 한 끼만이라도 좋은 음식을 먹게 하는 등 실질적인 남북 화해를 위해 헌신하였다.

가톨릭 신앙은 불교, 개신교 등 다른 종교와 함께 분열과 반목으로 상처받은 미국을 치유하는 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 대통령 바이든의 건승을 기원한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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