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이름도 성도 없는 음식

2021-02-04 (목) 김경희/소아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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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짙은 잿빛 하늘은 무겁게 떠 있는 구름에게 비를 조금 부어 내리라 할까 아님 살랑살랑 흰 눈을 뿌리라 할까 고민 하느라 잔뜩 찌푸린 그런 아침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하늘을 ‘며칠 굶은 시어머니 얼굴’이라 하셨을 거다.

버터와 치즈는 들어 있는 깡통도 비슷하고 열어 보면 색깔도 비슷했다. 버터는 더운 밥에 한 숟갈 넣고 간장 몇 방울, 계란 하나 넣고 비비면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 치즈는 더 미끌 거리고 맛이 진했고, 먹고 나면 금방 화장실로 향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생소한 음식이라 이게 무어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이름도 성도 없는 음식’이다 하셨다. 전쟁 후 미국 사람들이 보내준 구호식품 중에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된 음식은 밀가루였다. 보리 고개가 힘들어 굶는 사람이 많던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은 왜 꼭 밥을 먹어야 하느냐. 빵을 먹으면 될 걸.” 했대서, 세상물정 모르는 ‘국부’라고 빈축을 사던 시절, 우리는 빵을 구워 먹는 일상을 아직 모를 때였다.


할머니는 멸치를 넣고 칼국수를 끓이신 뒤에 애호박을 조금 살살 볶아서 새우젓과 참기름을 몇 방울 쳐서 국수 위에 얹어 주셨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내가 국수 틈에 숨어 있는 멸치를 골라 내는 동안 불어서 흐느적 거리는 국수가 맛이 없어 호박만 먹곤 했는데, 할머니는 “멸치도 생선과 같은 단백질이니 먹어 두라.” 하셨다.

밀가루가 바닥이 나면 미국 사람들이 가축 먹이로 썼다는 호밀 가루로 걸죽 하게 감자, 고구마, 호박을 넣고 끓여 주셨다. 다른 식구들은 열심히 먹고 허기를 채웠지만, 내가 호밀 냄새가 역해 먹지 못하면 할머니는 단 고구마를 몇 점 더 넣어 주셨다.

코끝에서 통 호밀 가루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경희야” 조용히 부르시는 할머니의 음성과 더운 입김이 귀를 간지럽힌다. 미국 온 지 여러 해가 된 뒤 극락으로 가실 때 임종을 못한 죄책감 때문에 슬퍼 하는 나를 위해 가끔씩 바다 건너 산 너머 꿈에 찾아 오신다.

이제는 한국이 밥을 굶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으리으리한 호텔의 뷔페 식당엔 여러 나라의 음식으로 가득 하고 두 집 건너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한국에 다니러 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은 친구가 데리고 가준 자그마한 식당의 깡 보리밥과 열무김치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건강식이라 해도 나는 아직도 그 때의 냄새가 되살아나서 통밀 빵이나 통밀 가루로 만든 파스타를 먹을 수 없다.

미국 사람들이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고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끝이 보이지 않는 꼬불 꼬불 줄을 서서 자선단체에서 나누어 주는 음식을 배급 받으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광경을 본다.

그들 중의 부모나 조부모들 중엔, 한국에 전쟁이 났다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지도에서 찾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게 “이름도 성도 없는 음식”을 먹게 해 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경희/소아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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