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

2021-01-13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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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의뢰인은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비밀이나 약점, 재판에 불리한 정황까지 모두 변호사에게 솔직하게 알려줄 수밖에 없는데 대신 변호사는 이렇게 업무상 얻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처럼 변호사의 비밀유지는 의뢰인에게는 직무상 의무에 해당하지만, 형사사건에서 의뢰인의 방어권과 묵비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기관이나 제삼자에 대해서는 그 비밀을 공개하지 않을 변호사의 권리가 되기도 한다.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변호사에게 범죄사실을 자백한 경우에도 그 비밀은 보장되어야 한다.

비밀에 관한 정의는 나라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의뢰인의 신분을 비롯한 가족관계, 질병, 재산, 유언장의 내용, 범죄사실, 반윤리적인 행위 등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법적인 조력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포괄적으로 포함한다고 보면 되고, 비밀유지의 주체는 변호사와 사건수임을 상담한 의뢰 당사자이다.


설혹 가족이나 타인은 수임료를 대신 지불했다고 하더라도 주체가 될 수 없고, 수임계약 체결까지 이르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담내용도 비밀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비밀유지 의무는 법으로 정해진 특수 상황이나 의뢰인의 동의가 없다면 수임이 종료되거나 사건의 종결, 심지어 의뢰인의 사망 이후까지도 이어진다. 단적인 예로 애리조나주에서 있었던 한 살인사건에서 진범이었던 제삼자가 죽기 전 자신의 변호사에게 자기가 살인의 진범임을 자백한 일이 있었다.

이 사람이 사망 후 그 변호사가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려고 했으나 법에 예외 조항이 없고 의뢰인의 동의도 없었다는 이유로 재판장은 변호사의 증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결국 무고한 피고인 빌 맥엄버(Bill MacUmber)는 2건의 1급 살인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37년간을 복역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었다.

이처럼 산 사람의 억울한 사연보다 죽은 사람의 권리를 더 중요하게까지 여기는 비밀유지 의무는 무언가 형평에 맞지 않고, 비상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법치주의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리여서 거의 절대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영국, 한국 등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이를 법제화하여 실행하고 있다.

따라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한 변호사는 자격정지나 자격박탈 같은 중징계를 받을 수 있고, 또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해 얻어진 정보는 재판에서 증거로서의 효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비밀유지 의무의 면제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중 하나는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와, 의뢰인이 범죄 또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데 변호사가 도움을 주는 경우(이것을 법률용어로 ‘범죄-사기의 예외’라고 함, crime-fraud exception)이다.

최근 들어 후자의 ‘범죄-사기의 예외’를 이유로 한국뿐 아니라 미국 검찰도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는 일이 잦아져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의사 교환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 검찰은 2016년 롯데그룹의 탈세 의혹을 수사하면서 대형 로펌으론 처음으로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 수색한 데 이어 2018년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서도 한국최대 로펌 김앤장까지 압수 수색을 실시했다.

미국에선 러시아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연방 검찰이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Michael Cohen)의 사무실과 호텔방에서 수색영장을 집행함으로써 미국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의뢰인과 변호사와의 신뢰를 위해선 숨김없는 의사소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같은 신뢰를 깨트릴 수 있는 검찰의 잦은 압수 수색도 문제지만 의뢰인의 범행을 때로는 부추기기도 하는 변호사들의 윤리의식 제고 또한 절실해 보인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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