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년 성탄 계절이 올 때마다…

2020-12-21 (월) 김재열/뉴욕센트럴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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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뉴욕으로 돌아오려고 인천 공항에서 3등석 데스크에서 탑승 수속을 했다. 상냥한 여직원이 말했다. “손님! 좌석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돼있습니다.”, “ 아니요! 내가 업그레이드를 신청한 적이 없는데요.”. 직원이 다시 말했다. ”‘컴퓨터에 미리 메모가 돼 있습니다. 편하게 가십시오! “.

교회에 돌아와 알고 보니 아시아나 항공사 뉴욕 지점장이 우리 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그 주에 주일예배 나왔다가 담임 목사가 한국 출타 중임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회사에 나가서 담임목사의 이름을 찾아서 업그레이드를 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매년 한 두 차례 모국 방문을 하게 될 때마다 주 집사는 과분한 대접을 베풀어 주었다. 한사코 거절하고 사양했지만 “목사님! 지점장이 임의로 쓸 수 있는 권한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여행해 주시면 제가 도리어 감사하겠습니다.” 했다. 그렇게 몇 년 간을 호강하다가 주집사는 임기를 마치고 인천 공항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교회를 떠났다.


그 후에 한국을 방문할 때 겪었던 쓰나미 같은 대형 부끄러움의 사건이 터졌다. 그 때는 대한항공편을 이용했다. 탑승 수속을 위해 데스크 쪽을 향하여 다가 갔을 때였다. 우리 교회 홍집사 남편인 김부장이 담임목사를 반갑게 알아보고 프리티지 데스크로 안내를 했다.

김부장의 아내는 신앙생활이 열심이었지만 남편은 초신자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담임목사를 반갑게 맞아서 프리티지 카운터에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내 손에 라운지 티켓까지 들려주면서 “목사님 라운지에서 편히 계시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고는 감사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라운지라는 곳에도 처음 가서 호강을 하고 있었다.

김부장은 나를 비즈니스 승객들이 보딩 하는 입구로 안내하면서 “목사님! 편히 다녀오십시오.”, “부장님 덕택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쾌적하고 조용한 비즈니스석으로 들어섰다. 나는 영락없는 VIP가 된 기분이었다. 상냥한 승무원이 “손님! 좌석 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네, 28A입니다.” 여승무원이 말했다.“그 좌석번호는 이코노믹석인데요.”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아! 그래요?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그리고 빨리 이코노미석으로 갔으면 쓰나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은 자연스럽게 “틀림없이 김부장님이 업그레이드를 했을 텐데요.”, “그러시면 가서 앉아 계시면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3등칸 28번 좌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직원이 왔다. ‘손님! 이 좌석이 맞다고 하십니다.”

‘와우!!!!!~~~ 이걸 어쩌면 좋은가? ’내 얼굴엔 화끈화끈 이글거리는 숯불이 피웠고, 가슴엔 거대한 창피의 쓰나미가 덮쳤다. 이걸 어쩌면 좋은가? 그 동안 대접만 받는데 익숙했다가 그날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 참! 그 김부장은 지점장이 아닌데, 부장 직급으로 라운지 티켓과 보딩 하는데 우선권의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김부장을 당황스럽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은가? 그 날 이후로 영영 김부장은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매년 성탄 계절이 올 때마다 김부장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동시에 4등칸이 없어서 평생을 3등칸만 이용했다는 슈바이처 박사의 겸손도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님”의 성탄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제라도 그 김부장을 찾고 싶다. “김부장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 글을 보시면 꼭 연락 주세요. 그리고 아직도 꺼지지 않는 핀 숯불도, 쓰나미도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재열/뉴욕센트럴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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