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지 말아라

2020-12-17 (목) 조민현/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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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갓 나와 바로 천주교 신학교를 들어가 4년을 보냈다. 신학교의 생활은 마치 거대한 봉쇄 수도원과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공동으로 침묵 묵상기도를 하고 아침미사를 하고 저녁은 꼭 대침묵으로 끝났다. 말을 해서는 안되기에 손짓 발짓, 일찌감치 불도 소등이 되어 어둠과 정적이 신학교를 뒤덮는다. 일학년 때는 외출이 아예 되지를 않았고 2학년, 3학년은 한 달에 한번 4학년에야 주말에 외출이 되었다.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사제의 길을 간다고 신학교에 들어왔는데 그때 나는 혼자 사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혼자 살겠다고 한 것 같다.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간다면서 혼자라서 외롭고 그래서 자유롭다고 비틀 비틀 아슬 아슬 걸어왔던 나의 삶에는 깊은 골짜기처럼 깜깜한 짙은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그냥 슬펐고 이유 없이 허전했고 까닭 없이 아쉬웠고 대신학교 운동장을 마구 달리며 낙산의 언덕을 길 잃은 당나귀처럼 수없이 헤매면서 그냥 아프고 내 텅 빈 마음자리가 아려왔다. 가끔씩 종로에 사무실이 있었던 아버지가 면회를 오시면서 어떻게 여기만 들어오면 이렇게 썰렁하고 분위기가 짠하다고 하시는데 마치 형무소에 수행살이 하는 자식을 보러 오신듯 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세상 밖에서 면회 오셨다고 하면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자식은 뛰어나가 아버지를 반겼다.

신학교 4년은 내게 괴롭고 불안하고 떨어지지 않는 죄의식과 내 자신안의 모순과 유혹 존재의 어정쩡함에 십자가에 고통스럽게 죽으신 하느님을 찾았고 찾았다. 또 고해신부님에게 달라붙어 언제 이 어둠과 불안이 사라질 거냐고 부활이 있냐고 은총이 있냐면서 나는 내가 너무 괴롭다고 내가 너무 싫다고 너무 아프다고 매달렸다. 신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가니 마음에 편했고 군대는 몸은 힘들었지만 생활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군대보다 더한 신학교를 거친 나라서 그런지 몰랐다. 나에게 서울가톨릭대학 신학교는 내 영혼의 못자리였다. 지금도 되돌아보면 그냥 마음이 아려온다.


그렇게 돌고 돌아 나는 미국에 신학교까지 와서 신부가 되어 또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가 나는 혼인한 부부들을 사목하는 Marriage Encounter 를 하게 됐는데 그때 관계란 말을 배우게 되었다. 관계는 뭔 얼어 죽을 관계?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라니깐, 쓰러지지 말고 죽을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네 임무를 완수하라고, 본래 존재란 외로운 거야, 하느님 앞에 홀로 서 있어야 해! 너에겐 사명이 있어 임무가 있다고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진세를 버렸다메, 사랑도 버리고 이름도 버리고 네 몸까지 버렸으니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활 활 태우다 가버리면 되는 거지, 뭔 관계가 어딨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하하, 그런데 그게 아닌 거 같아! ME와 인생살이 속에 깨달은 것이 우리는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살아 생명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나와 하느님과 맺은 관계, 내가 내 자신과 맺은 관계, 내 이웃, 가족, 형제자매들 그리고 수많은 ME 부부들, 내 신자들과 맺은 관계, 심지어는 나를 내신 하느님이 만드신 다른 많은 창조물과의 관계 등 우리는 이미 관계의 바다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모든 것을 내 형제 자매라고 불렀다. 내가 인생을 걸어오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인연들, 감사하신 분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 무엇보다도 나의 부모님, 아 우리는 관계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세상에 나 밖에 없다는데 아마 내가 알았던 그게 아니라 아마 다른 뜻일 게다. 우리는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혼자서는 꽃을 피울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거름이 되어줬고 누군가가 나에게 햇살처럼 따뜻하게 온기를 주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거침대가 되어줬다. 오늘의 나는 많은 관계들 작품이다.
그래서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지 말아라. 같이 가자.

<조민현/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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