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생각하는 잡스의 편지

2020-12-09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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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비즈니스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에 즐거움은 많지 않았다. 결국 부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일 뿐이다.

지금 병들어 누워서 과거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가 없어져 간다는 사실을.
어둠 속의 나는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를 나는 가져가지 못한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야 말로 자신을 따라다니고, 자신과 함께 하고, 자신에게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이다.


사랑은 수천마일을 넘어설 수 있다. 인생에 한계는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성취하고 싶은 높이를 성취하라. 이 모든 것이 너의 심장과 손에 달려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는 무슨 침대일까. 그것은 병들어 누워 있는 침대이다.

나는 내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대신 아파줄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잃어버린 물질적인 것들은 다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순간, 어디에 있던지 가족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너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타인에게 잘 대해줘라.“

절절하게 쓰여진 이 글은 혁신과 성공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쓴 편지다. 거의 유언과도 같은 이 글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지금과 같이 코로나로 어이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연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정신없이 거의 10개월을 보내더니 벌써 12월이다. 인생으로 치면 후반기나 마찬가지다. 이 때가 되면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한 해,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후회하며 안타까워한다. 세상을 뒤바꾼 스티브 잡스도 마지막에 후회하며 우리 모두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죽은 사람이 15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요사이 미국에서도 또 다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연말이 왔지만 파티는커녕, 가족들도 마스크 착용에다 거리두기까지 해야 할 형편이니 다들 만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앞이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큰 걱정거리를 안고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당국의 어떤 뾰족한 방안이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감염이 확산되면 식당도 다시 봉쇄한다는 소리만 요란하다.


결론이 없고 미래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될지 모르는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복잡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찾아든 코로나로 인해 한인사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동안 사람과의 만남을 갖지 못했다. 세계적인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는 인생은 상봉, 즉 만남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거의 집안에서 머무르며 심지어 가족간의 상봉조차 제대로 못했다.

인간의 만남은 곧 사랑이요, 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우리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만이라도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연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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