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외국인 불법행위청구법(ATS)

2020-12-02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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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권이 신장하면서 인류는 대량학살, 고문, 아동학대와 같은 반인권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제사회는 U.N.헌장, 세계인권선언, 고문에 반대하는 U.N.선언 등에 국제인권의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위반 시 책임을 묻기 위해 국제 유고전범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와 같은 국제재판소를 창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조약에 따라 만들어지다 보니 설치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관할권도 제한적이며 무엇보다 법적 구속력이 약해 실효성에 의문이 많았다. 또 피해 당사자가 약소국일 경우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힘든 제약도 있었다.

1789년 당시 신생국가에 불과했던 미국의 첫 연방의회는 ‘외국인 불법행위청구법(Alien Tort Statute, ATS)’이란 것을 제정했는데 그 내용은, ‘지방법원은 국제관습법 혹은 미국이 체결한 조약의 위반 행위에 대해서 외국인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관할권을 지닌다’는 짤막한 법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적용조건이나 입법목적 등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건국 초기 주미 외교관 상대 테러행위 등이 빈번했던 상황에 비추어 국제무대의 신출내기 미국이 국제조약과 관습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200여년 전에 이런 법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해낸 것은 인권운동가들의 업적이다.

오랫동안 유명무실했던 이 법은 1980년 필라르티가 대 페냐-이랄라(Filartiga v. Pena-Irala) 사건을 통해 급부상하게 된다. 사건의 요지는, 1976년 파라과이 독재정권 하 비밀경찰이 반정부 운동가 조엘 필라르티가의 17살 아들 조엘리토를 납치하여 고문으로 죽게 했다. 조엘리토의 누나 돌리는 이 사건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고 우연히 자신의 동생을 죽인 경찰간부 페냐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리는 페냐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하는 한편 ATS법에 근거하여 고문 및 살인혐의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뉴욕의 1심 법원은 외국 정부가 그 나라의 자국민에게 가한 행위에 대해 미국 법원은 재판권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으나 항소법원은 각종 국제조약과 선언문 등을 인용해 ‘고문자는 이전 세대의 해적과 노예 무역상처럼 모든 인류의 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지방법원이 관할권을 지닌다고 1심 판결을 뒤집었던 것이다.

비록 페냐는 법원이 명령한 1,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한 푼도 갚지 않고 파라과이로 추방되었지만 이 판결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의 재판관할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함으로써 미국인과 관련이 없고 미국의 영토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더라도 미국이 앞장서 세계의 도덕적 경찰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 판결 이후 여러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은 정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다국적 회사들에도 법의 적용범위를 넓혀가 2008년까지 약 185건의 인권 관련 ATS 소송이 진행되었다.
사태가 점차 확대되자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연방대법원은 ATS의 해석 축소작업에 착수하였다.

2004년 있었던 소사 대 알바레즈-머체인(Sosa v. Alvarez-Machain) 사건을 통해 ‘국제관습법’의 범주를 법안이 처음 만들어진 18세기의 문제였던 ‘해적질, 대사 폭행, 안전통행법 위반’과 같은 악질범죄로만 국한하였고, 2013년 키오벨 대 로열 더치 셸(Kiobel v. Royal Dutch Petroleum) 사건에서는 외교갈등을 고려하여 미국 영토나 국익에 관계가 있어야만 미국법원에서 사법권을 가질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 대법원은 12월 중에 이런 쟁점의 카길 대 도(Cargill v. Doe) 사건을 심리할 예정인데 과연 대법원이 국제적 인권 문제를 중시할지, 아니면 미국의 국익보호 우선 결정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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