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루비콘 강을 건넜다

2020-11-1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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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 대선에 온 세계의 눈이 쏠렸다. 11월3일 주사위는 던져졌고 11월7일 루비콘(라틴어: Rubico/ Rubicon) 강도 건넜다.

루비콘 강은 이탈리아 북동부를 끼고 아드리아 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로마 공화정 말기, 이탈리아와 속주인 갈리아의 경계를 이뤘다. 본래 이 강은 고대 로마 당시 전쟁/훈련 등으로 파견나간 군인들이 돌아오는 길에 루비콘 강을 건널 경우 로마에 충성한다는 서약의 뜻으로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일종의 전통과 법규가 있었다. 만약 무장을 하고 이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곧 로마에 대한 반역이었다.

이를 깬 사람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BC 44)다, 기원전 49년에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갈리아 원정을 함께 했던 군사들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한다. 로마에는 그의 정치적 라이벌인 폼페이우스와 로마 원로원들이 시민들에게 인기 높은 그를 반역죄로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무장해제 한 후 이 강을 건너면 바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 권력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루비콘 강을 건너다’는 표현은 되돌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그 이후 카이사르의 1인 통치는 ‘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키웠고 기원전 44년 원로원 회의장으로 들어서다가 양아들 브루투스와 귀족들이 휘두르는 칼에 죽고 만다.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 앞에서 ‘카이사르를 사랑했지만 로마를 더욱 사랑했다’고 암살의 변을 말한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란 말과 비슷한 한국 속담 낙장불입(落張不入)이 있다. 화투판에서 쓰이던 용어로 요즘은 거의 일반화 되었다. 한번 낸 패는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 이미 버린 패는 잊고 집중해서 쳐야 선방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접고 다가오는 시절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월3일 대선결과 7일에 민주당 조 바이든의 승리선언이 나왔다. 바이든은 선거인단 279, 득표수 76,343,332 득표율 50.8%, 트럼프는 선거인단 214, 득표수 71,444,567, 득표율 47.5% 였다.

트럼프는 이에 불복했다. 재검표를 요구하고 대선결과를 뒤집으려는 소송전에 들어갔고 트럼프 지지자 대규모 집회도 연다고 한다.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던 보수 성향 언론조차 민주주의 전통을 존중하고 품위 있게 자리를 비우는 것이 자신은 물론 나라에도 최고의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사기’ 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그대로 법정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물론 트럼프는 재검표를 요구하고 법적 추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승패의 세계에서 승자의 처신이라는 것이 있지만 패자의 도리라는 것도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경선을 치른 민주당 앨 고어의 승복 연설문이 지금도 회자된다.
“국민의 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나는 승복하겠습니다. 나는 국민에게, 특히 우리를 지지했던 모두에게 새로운 대통령을 지지하여 단결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번에 박빙의 승부를 펼친 트럼프는 대단하다. 미 국민 7,150만 명 이상이 그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재임 중 잘한 것이 많았고 그만큼 열심히 일한 대통령도 드물었다. 이번에 바이든을 찍은 유권자 중에도 트럼프를 찍을까 고민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설사 이 혼란과 분열의 상황에서 대법원으로 가서 결과가 뒤집힌다고 하자. 그야말로 온 나라가 내전에 돌입하지 않겠는가. 지금 분하고 억울하고 아쉽더라도 한 국가의 지도자는 알면서도 속고, 지면서도 이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미국은 승자와 패자가 화합하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응급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깨끗한 승복만이 최우선적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온 국민의 상처 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꽃 ‘ 선거 ’는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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