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 나 좀 그만 해라!

2020-11-05 (목) 조민현 요셉/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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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일이 바빠지고, 이것 저것 어려운 일도 많고, 여기 저기 사람들 말도 많고,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도 답답한데 가만히 아침 미사 전 감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만약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겠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끊임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가 내가 하면 나를 휩싸면서 꼬리를 물고 밀려들어온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고 성찰을 해보면 여전히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내가 힘든지 편한지, 아픈지 기쁜지, 나! 나! 나! 말이야 여기에는 다른 이는 없다.

다른 이는 단지 나를 위해서 존재할 뿐인 듯 하다. 하느님도 뒷전이고 예수님도 없고 교회도 단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듯하다. 결국 모두 말로만 한 것이다. 진심은 오로지 나한테만 가 있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왜 내가 18살 그 어린 나이부터 이 길을 걸어오고 있는 것일까?

사제라는 공명심 때문에, 사제라는 신분보장 때문에, 아니면 오랜 습관 때문에, 아니면 벗어나기에 두려워서, 새로운 삶을 살아 나가기에 두려워서, 어떻게 보면 다 맞는 말인데 왜? 왜? 점점 나를 중심으로 던져지는 질문들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한 채 나를 무겁게 내리 누르며 더 깊은 답답함과 어둠속으로 침몰하게 한다.

내 안에 누구 말마따나 내가 너무 많다. 시작도 나이고 끝도 나이고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니 이게 자아중독인지 병적인 나르시시즘인지 모르겠다. 기도를 해도 나이고 정말 아파 괴로워 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하게 상담을 해도 결국은 나에 대한 연민, 고민과 집착으로 되돌아온다.

나라는 게 너무 지겹다. 내가 없어지고 좀 엷어지고 낮아지고 작아지고 마치 텅 비워진 방처럼 산뜻하고 고요하고 적적한 산길처럼 조용히 걸으며 살 수 없을까?

그런데 왜? 왜? 이 길을 걸었냐고? 처음에?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잖아? 내가 어린 나이 가장 순수하고 어리고 천진난만하고 여릴 때 그 분을 사랑했잖아. 그냥 무작정 좋았잖아.

지금처럼 때가 묻기도 전에 많은 것을 보고 그림 그리고 따지고 계산하고 앞뒤를 생각하기도 훨씬 전에 그냥 그분이 좋았잖아. 마치 신 내린 무당처럼 못 견디게 온몸이 아프고 흔들릴 만큼 하느님의 제단이 좋아서 누구도 못 말리게 매일 새벽미사로 달려갔잖아. 그냥 좋았어. 다른 이유가 없었잖아.

그리고 이 긴 시간 인생의 험난한 길을 살아오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파하고 죄지으면서 그분을 향해 걸어 왔잖아. 왜냐고? 그 대답은 그 분을 사랑해서였잖아. 야! 이 바보야! 그냥 예수님이 좋았어.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좋았는데! 마음속으로 나만의 이유를 내려다본다.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자기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거지, 누구를 진정 사랑하고 그 사랑이 불타오르면 촛불처럼 자기는 점점 작아지고 녹아버리고 그 사랑으로 다 타버리는 것이지. 그래서 더 이상 나, 나, 나라는 것은 없는 거야.

오직 그 분뿐이지! 그 분이 첫사랑이잖아! 그런데 되돌아보면 너 너무 타락했다. 초심을 잃어버렸네. 엄청 때가 묻었네. 어느새 하느님이 날아가 버리고 쥐뿔같은 자기만 남았네. 소금이 짠맛을 잃었네!
나! 나! 나! 나! 지겹지도 않냐? 갑자기 내가 역겹고 지겨워진다. 이제 그만하자. 이정도면 충분하다. 나를 내려놓고 그분만을 보련다!

<조민현 요셉/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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