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유불급

2020-10-1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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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9월30일 KBS-2TV가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나훈아’ 가 이곳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했다. “나훈아 보셨죠? 대단해요.”, “오랜만에 고향 그리운 마음을 달래줬네요” 등등. 나훈아는 한인 2세들에게도 ‘테스 형’을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그러자 부산시 동구에서는 뒤늦게 나훈아 관광 콘텐츠가 들어선다고 한다. 나훈아가 ‘부산 동구 초량2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직업은 가수 하나입니다.“ 는 이 한마디에 갑자기 나훈아를 기리는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내년 상반기에 도심하천 초량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며 나훈아 거리도 함께 조성할 방침이라는데 나훈아 관련기록들을 볼 수 있게 하고 노래가 흘러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다시 열린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지역 문화 활성화 방안으로 너도 나도 지역 축제를 열고 지역출신 유명인 거리, 이벤트들로 지역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하다못해 최근 ‘미스터 트롯’에서 유명해진 13살짜리 신동 ‘정동원 거리’도 경남 하동에 생겼다.

한국에 다니러 갈 때면 시간을 쪼개어 지방으로 관광을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oo 드라마 촬영지’ 라는 커다란 광고판이고 표지판이다.

2001년경 강원도 설악산을 다녀오는 도로에서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온 송승헌과 송혜교가 함께 유리창을 닦던 분교 가는 길 표지판을 보았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2003년인가,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를 보러 갔을 때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고려중기 목조건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의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은 이후부터 건축물 기둥의 중간이 굵게 되고 위, 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게 된 주형의 기둥을 보고 싶었다. 건물의 조화와 융합, 고찰의 오래된 냄새와 흔적을 찾고 싶었었다.

그런데 부석사 입구에 대문짝만큼 큰 알림판에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지'라고 소개하면서 왕건역 최수종과 장화왕후 오씨 역 염정아가 절 안에서 스님과 차 마시는 사진, 기념사진들이 주르르 붙어있었다.

당시 수도권 최고 시청률 60.4%를 찍은 드라마라 할지라도 드라마를 안보는 사람도 있고 절의 고적함과 역사의 향기를 느끼러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그렇다. 2017년 여름, 서울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 바삐 길을 가는데 바로 앞에 웬 동상이 나와 하마터면 부딪칠 뻔 했다.


바로 2016년 세워진 ‘전국노래자랑’ MC 송해의 상반신 동상이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 안 될 정도로 좁고 복잡한 전철역 입구에 위치한 동상은 제대로 관리도 안되고 있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새로운 드라마가 계속 나오고 있다. 2~3년이면 최고 인기 드라마 촬영지나 세트장 방문 열기도 식고 만다. 이렇게 지자체의 촬영지 예산 지원은 공으로 돌아간다. 앞서 말한 ‘가을동화’ 분교는 철거되었고 ’태양의 후예‘, 강원도 태백 세트장은 주인공 송중기와 송혜교의 이혼으로 관광객 수가 급감했다.

얼마 전 중국 후베이성에 세워진 초대형 관우 청동 조각상이 지방정부들의 대표적인 혈세 낭비와 치적 사업으로 지적되어 당국의 재정비 시정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긴 수염 날리고 청동언월도를 오른손에 쥔 57미터짜리 관우 조각상이 후베이성의 모든 건물과 사람들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문화적 랜드마크가 남발되는 일이 한국에도 더 이상 일어나면 안되겠다. 나훈아는 훈장조차 사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부산 초량의 공무원들은 이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국 지방 곳곳을 여행하면서 특색 있는, 향토색을 맛보고 싶은 것은 미주 한인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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