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기지우

2020-09-0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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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65)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90세를 맞은 워런 버핏 버크셔웨이 회장에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했다. 게이트는 8월30일 자신의 블로그 ‘게이츠 노츠’에 “워런, 90세 생일을 축하합니다!” 하는 글을 올리고 직접 버핏의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영상을 공개했다.

세상에 태어나 성취한 것이 많은 두 사람이 25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깊고 진한 우정까지 나누고 있다니, 부럽다. 게이츠의 사무실에 저장된 단 2개의 단축번호는 아내 멀린다와 버핏의 연락처란다.

워런 버핏은 뛰어난 안목을 지닌 투자의 귀재로 불리며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은퇴 후 교육과 의료사업에 치중해 오면서 수년 전부터 유행성 전염병에 대한 백신 및 치료제 연구를 강조 해왔다.


코로나 사태를 맞고 보니 그의 뛰어난 안목과 지혜가 주목받고 있다. 사회에 선한 일을 하고 유익함을 주는 이들이 서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라니 참으로 멋지다.

한편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을 이유로 중도사임을 발표한 아베 신조(65) 일본 총리는 8월31일 도널드 트럼프(74) 미 대통령과 전화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미국 방문 등을 계기로 5차례나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즐기는 등 긴밀한 사적관계를 자랑해 왔다.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하면서 셀카를 찍는 등 아베와의 친밀함을 과시하던 트럼프는 아베의 사의에 “나의 훌륭한 친구인 아베 신조 총리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안 부럽다. 두 사람의 만남은 자신의 지위를 기반으로 한 보여주는 우정이었고 정치적 이익이 개입된 터라 진실성이 없다. 정계를 떠나는 아베와 올 가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을 하든, 못 하든 다시 함께 골프를 칠 것 같지 않다.

더 이상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년~수십 년이면 모두 세상을 떠날 것이다. 역사에 베스트 프렌드로 남을 자들은 누구일 지 분명하게 보인다.

역사적으로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이들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연주가 백아, 그의 친구 종자기는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렸다.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뜨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며 칼로 거문고 줄을 모두 끓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실학자이며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와 차 문화를 중흥시킨 승려 초의선사와의 우정도 깊었다. 초의선사는 봄에 제일 먼저 나온 찻잎을 김정희에게 보냈고 김정희는 그 해 내린 첫 봄비를 대접에 받은 뒤 빗물에 먹을 갈아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조선 중기에는 이항복과 이덕형이 있다. 다섯 살 차이지만 임진왜란 등 난세에 움직이는 행동파 이덕형과 치밀하게 사수하고 수습하는 이항복은 역사적 우정의 상징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않게 되고 같이 식사할 기회도 없다. 주위 친구 중 수십년간 잘 만나왔지만 오랫동안 못 만나다 보니 굳이 무리해서 만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참에 셀폰에 저장된 수많은 전화번호를 살펴보자. 카톡 친구가 1.000명이 된다고 자랑하는 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 찐 ‘ 친구를 가려내는 게 참 어렵겠다싶다.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남는 것은 가족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낙담할 것도 없다. 당신도 친구의 전화번호부에서 정리 대상이 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 외롭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나쁜 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 내면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 삶에 대한 성찰도 생긴다. 지기지우(知己之友),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 한 두 명이면 족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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