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노익장

2020-08-26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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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을 했던 땅이다.
모세는 그들을 이끌고 자신들의 신이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기약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신은 이 약속을 지켰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수십년간 광야에서의 방랑을 끝내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는 새 시대에는 새 세상에 맞는 지도자가 요구된다는 뜻으로 모세 자신은 출입을 금지 당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모세가 행한 잘못 하나 때문에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신의 계시를 통해 젊은 리더가 세워진다. 느보(Nebo)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데,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이곳에서 눈물을 머금은 마지막 설교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불편한 퇴장은 중국 역사에도 있다. ‘무산계급 문화 대혁명'은 1966년 중국 공산당 지도자인 모택동에 의해 시작된 사회주의 운동이다. 모택동은 기성질서를 거역하고 세상을 뒤집는 혁명가가 나이 어린 홍위병들을 동원해 젊은 열정과 광기의 시대에 진입했다.

문화혁명의 전위대인 홍위병은 부모세대의 보수성을 성토하며, 나이든 교사들의 타락과 부패를 비난했다. 홍위병은 대부분 너무 나이가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기성세대를 모조리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업적이나 사회구조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순수하고 좋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갈등과 반목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었다. 후세대는 항상 기성세대가 자기들에 대한 배려를 충분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기성세대가 이 점을 이해한다면 신세대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런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세대의 불만이나 지적을 해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난 2016년도 시작된 흑인 인권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기성세대에는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운동은 기성체계에 대한 반항심으로 뭉쳐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때마침 벌어진 코로나 사태는 나이든 사람들이 주로 사망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사가 되고 있다.

1세대의 세상을 등지는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퇴장 시기가 더욱 가까이 온 것일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이런 현상은 이미 사회적 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분야별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실제 미국의 현실을 보아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이번주에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각각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이제 내년부터는 미국의 미래가 70대의 백전노장 두 명 중 한 명에 의해 다스려질 것이다.

누가 됐든 다 고령이고 만약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내년 취임식 때 만78세로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이번에 바이든 후보는 자신의 입장을 ‘과도기 역할’이라고도 말했다. 바이든 후보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란을 염두에 두고도, 만에 하나 유고시 해리스의원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방식을 돌려 말한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다음 대선에서 해리스 의원이 민주당에서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과연 트럼프, 바이든 두 고령의 후보들이 노익장의 힘으로 혼란속에 있는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풍요하고 안정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4년 후인 차기 대선에서 결국 젊은 리더의 손에 미국의 미래가 넘어가면서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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