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전력으로 현충원 안장의 논쟁을 일으킨 백선엽 장군의 왜곡된 삶을 밝혀 보고자 한다.
한국의 보수언론에서 다부동전투를 이끈 백선엽이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묘사 되고 있으나, 당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이 싸운 전투의 일부이고 다부동전투를 승리를 이끈 결정적인 요인은 미 공군의 B29가 가한 융단폭격으로 북한군 3만 여명 사상자를 낸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한국의 친일보수세력이 백선엽을 과대포장 하고 있다.
허나 백선엽의 가장 큰 죄악은 그가 일제시대에 만주 특설대라는 만주군 장교로 있으면서 항일게릴라 세력을 토벌한 것인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항일게릴라였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독립군들이었던 거다.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던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장교가 죽어서 현충원에 묻힌다는 사실에 참으로 분노할 수 밖에 없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의하면 만주특설대는 사로잡은 독립군을 모조리 칼로 참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백선엽을 용서 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이나 용서조차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친일파라 비판하는 것은, 일제시대에 면장이나 일제에 징집되어 일본군에 복역한 것을 친일이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백선엽이나 다카키 마사오 처럼 적극적 친일과 그에 대한 반성조차 없는 것을 친일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전역 후 백선엽의 치졸한 삶은 1981년 전두한 정권에 의해 다시 드러나는데, 백선엽이 자신의 동생과 만든 인천의 선인재단 비리사건이다. 약 9,000명이 넘는 부정 입학으로 당시 6억원이라는 거액을 챙겨, 본인은 이사회에서 물러나고 동생 백인엽은 1년 징역을 받았다.
모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백선엽은 지금 강남역 근처에 시가 2000억 정도의 빌딩도 소유하고 있는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빌딩 소유권을 두고 아들과 법정 소송전까지 벌였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막장 인생을 살다간 사람을 영웅시하고 청렴한 삶이라고 치켜세우는 성우회, 보수언론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적폐청산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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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식/ MTA 수퍼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