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수꾼인 양심

2020-07-21 (화)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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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있어 사람이 사람답게 된다. 양심은 파수꾼이다. 양심은 교통순경이다. 양심은 길잡이다. 양심은 하늘의 사지이다. 양심이 없다면 인간의 방향이 엉망이 된다, 길 잃은 방랑자가 된다. 양심을 잃은 사람을 망난이라고 부른다. 양심은 나의 지침판, 나의 길잡이, 나의 스승이다.

양심적인 사람을 선각자, 인도자, 의인이라고 부른다. 양심이 무너지면 결혼제도도 깨지고, 정의와 자유도 파괴된다. 양심이 무너지면 강한 자가 부를 독점하고 모든 나라는 무정부 상태가 된다. 양심을 못 믿으면 세금제도도 존립할 수 없고 모든 국가들이 파괴된다. 양심이 인간 공동체의 중심적인 힘이다.

미국 정부의 ‘양심금고’에는 해마다 약 1,000만 달러의 무명 헌금이 들어오는데 그 돈들은 세금을 속였다는 양심적인 헌금이라고 한다.
웹스타 사전에는 양심을 ‘옳고 그름을 알게 하는 감각’이라고 풀이하였다. 정신의학 사전에는 “직감에 의한 행동의 반대편에 서는 정신구조”라고 되어있다. 욕심에 의한 행위는 직감을 따르는 것인데 그것을 저항하는 양심이 싱싱하게 그 기능을 발휘해야 비로소 사람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기분 좋으면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현재인의 가치기준은 잘못된 것이다. 기분이란 말을 한국인이 많이 쓴다. 기분 좋다, 기분이다, 기분 잡쳤다 등 수 많은 기분이란 말을 사용하며 산다. 그래서 기분파란 말도 생겼다. 옛 조각가인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을 제작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의 참다운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행동하는 사람보다 생각하는 사람이 늘 앞서 가야 한다.

영어의 양심은 라틴어의 콘시엔티아(Conscientia)에서 나왔는데 그 말은 ‘함께 한다’는 뜻이다. 부부가 함께 생각하는 것이 부부의 양심을 따라 사는 행복,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 서로의 양심을 따르는 바람직한 사제간의 교제이다. 동거동락 즉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생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짐은 함께 지면 가벼워진다. 책임도 함께 지면 편해진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천국이다.

사람의 희로애락이 양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체험하는 기쁨이란 양심의 만족을 가리키며, 슬픔이란 양심의 불만을 가리킨다. 사랑해야 양심이 편하다. 미워하면 양심이 편치 않다. 양심은 사람의 행동뿐이 아니라 생각도 조정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학자들은 양심을 가진 인간을 가리켜 성선설(怯善說)을 주장하였다.

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살아있으면 위인이다. 양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 칭찬 받는 사람이 되고 양심을 따르지 않으면 욕먹는 인간으로 평생을 살게된다. 그런데 양심을 위하여는 보약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보약으로 하고 다른 종교들도 각자의 보약이 있다.

역사상에 출현하였던 소위 성인들이란 인류의 보약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 양심의 등대가 되었던 인물들이다. 참다운 교사란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제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국 속담에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는 말이 있다. 착한 마음을 하늘이 안다는 말이다. 착한 마음이란 양심을 앞세운 마음이다. 그러나 인간은 양심의 말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겨 양심의 소리를 따르지 않는 경구가 많다.

바른 판단이란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판단이다. 양심을 거스리게 하는 것은 교만과 욕심이다. 내 속에서는 날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양심의 소리와 교만과 욕심의 소리 사이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 사람은 의인이 된다.

양심을 따르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심을 어렵지 않게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의지로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사람은 인간의 강한 욕정에 눌려 바른 길에서 멀리 떠나기 쉽다.

<최효섭/ 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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