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텃밭에서

2020-07-10 (금) 이선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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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 금지 된 지도 꽤 오래다. 고작 나들이래야 뒤뜰 텃밭이다.
불안해서 불편한 세상과는 아랑곳없이 봄날 심은 모종들은 작은 꽃피워 열매 맺을 준비가 한창이다.
커다란 잎새에 빠끔히 나온 노란 박꽃을 보며 흥부의 복 바가지라도 열리려나? 웃음 지어본다.
부러진 일상의 하루하루는 책 몇 장 넘기다가 신문 몇 줄 읽다가
밀려들어오는 카카오톡 방문자와 문자 대꾸 몇 마디 하다 보니
오늘도 반나절이 후딱 가 버린다. 불편함 속에 기다려지는 내일의 바람이
나날이 짙어만 간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너무나 많은 것들,
그러나 동전의 양면성처럼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깨우쳐 준 교훈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제비의 다친 다리 외면하고 흥부의 복 바가지에만 연연하던 허황된 삶,
이제 소박한 내일에 족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라고 예기치 못한 고난이 깨우쳐 준다.
우리의 선한 지혜가 선택하는 가치관의 변화로 바람직한 내일이 되어 지길 간절히 바란다.
몇 달 만에 문 밖을 나서 차를 타고 달려본다. 마치 도망자의 승리같이 상쾌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답답한 마스크를 떼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하리.
오늘도 유월의 태양은 잎 사이에 숨어 앉은 노란 박꽃에 쏟아든다.

<이선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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