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변화

2020-06-2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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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센트럴 팍 길 건너에는 공룡 화석으로 유명한 자연사 박물관이 있고 입구에는 제26대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동상이 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초석을 닦은 자연주의자인 그를 기념하고자 세워진 이 동상은 좌우에 흑인남성과 인디언 남성을 거느리고 있다. 이것이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찬양한다며 박물관 측이 동상 이전을 제안했고 뉴욕시는 승인했다.

지난 5월25일 미네아폴리스에서의 조지 플로이드 죽음과 관련하여 미 전국에서 몇 주 동안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로버트 리 장군 등 노예 제도와 관련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 훼손 및 철거로 불똥이 튀었다. 고난과 불평등, 인종차별의 고통스러운 상징인 동상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은 1861년부터 4년간 일어난 남북전쟁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다. 그는 전역 후 위대한 교육자로 존경받았다.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시 한복판 도로 가운데 있는 리 장군 동상은 이달 말에 철거된다고 한다.


그리고 앤드루 잭슨 장군. 7대 대통령으로 1815년 뉴올리언스에서 지형지물과 솜 포대를 이용해 진지를 요새화해 영국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 미국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원주민을 대량 학살했고 강제이주 시켰다. 얼마 전 워싱턴DC의 잭슨 동상이 수난을 당했다. 그는 현재 20달러 지폐 인물이지만 오는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지폐인물의 운명도 바뀔 것이다.

미국인이 존경하는 제1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있다. 워싱턴D.C 남쪽 포토맥 강변에는 조지 워싱톤의 생가 마운트 버논이 있다. 취임전 노예 3,000명을 거느렸던 거부 워싱턴의 저택을 중심으로 세탁장, 마굿간, 노예들이 살던 방을 볼 수 있다. 그는 퇴임후 마운트 버논에 살며 모든 노예를 자유롭게 했다.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이지만 노예제를 찬성한 과오로 포틀랜드에서는 동상이 내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태리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있다. 서해 항로를 개척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인의 활동무대가 되었고 현재 미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복자로서 원주민들을 노예화하고 살해한 과오로 현재 미국 여러 도시마다 수난을 당하고 있다. 미네소타 주에서는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보스턴의 동상은 머리가 절단되었다. 1937년 제정되어 10월 둘째주 월요일로 기념하는 컬럼버스 데이가 앞으로 ‘원주민 저항의 날’ 로 될 상황이다.

또한 사우스 다코다 주의 러시모어산에 조각된 4명의 전직 대통령 석상도 인종차별 논란을 받고 있다. 조지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사라지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만 남는다. 그 자리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 누가 들어가야 미국인들의 공감을 살 까? 동상이 철거된 자리마다 누구의 동상을 세울 것인가? 흑인 인권운동가, 자수성가한 히스패닉, 미국 성장에 기여한 아시안? 과연 이들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이 러시모어나 관광지를 찾을까?

역사를 현재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미 일어난 과거가 다르게 바뀌지는 않는다. 과거는 고칠 수도, 현재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서도 안된다. 흑인차별 시각으로 보면 미국 역사의 절반은 수정되고 퇴출되어야 한다. 무조건 동상을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인 조형물이나 동상은 보존되어야 한다. 그냥 두기에는 불편하다면 박물관 전시관에 옮겨져 인종차별주의 논란에도 불구, 미국을 세우고 지키고 성장시킨 주인공들이란 타이틀로 가야 한다.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동상, 목 잘린 동상은 무섭기도 하고 거부감이 든다. 전세계에 정치적, 사회적 현상에 이어 문화 등 전 영역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동영상 서비스 목록에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 사라졌다. 인종적 편견이 일부 묘사되었지만 그 시대를 잘 나타낸 영화인데, 소설을 비롯 예술장르에도 이 바람이 불까? 앞으로 미국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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