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은 데리러 온대?”

2020-06-19 (금) 주동천/뉴저지 노스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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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로 갔던 장모님이 다시 뉴저지로 돌아와 양로원으로 들어가신 지도 벌써 일년 반이나 되었다. 평생을 자식 밖에 모르고 자식이라면 만사를 제쳐놓으시던 장모님은 다복하시게도 6남매 모두들과 골고루 사시다가 여생은 막내아들과 지내겠다며 한국에서 은퇴하고 돌아온 아들네 집으로 내려갔었다.

2년쯤 되었을까. 막내아들은 좋은 직장과 계약이 되어 다시 한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장모님은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양로원으로 가게 되었다.
워낙에 청결하시어 올해 백세가 되셨지만 피부도 젊은이처럼 깨끗하고 걷지 못하는 것 외에는 아직도 특별한 지병이 없으시다.

온가족이 백세 생신만큼은 후회없이 해드리겠다고 지난 1월 호텔에다 예약까지 해놓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사태로 백년을 맞은 생신잔치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사람은 이렇게 지날 수는 없다며 양로원측에 사정 이야기를 했고 결국 윈도우 비지트(Window Visit) 라는 특별한 면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TV에서나 보던 특별한 면회는 커다란 유리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는 병원에서 마련한 테이블과 “HAPPY100TH BIRTHDAY” 싸인판, 색깔별의 풍선들, 그리고 미국 스태프, 한인 스태프 십여 명이 장모님을 둘러싸고 창밖엔 우리 가족들이 둘러쌌다. 테이블 위에는 백세 생일 케익과 커다란 시루떡, 미역국, 갈비 같은 음식을 올려놓고 다같이 ” Happy Birthday” 노래를 불렀다.

백년이라, 하나에서 백까지 세는 것도 숨이 찰 정도로 긴 것인데 백년을 지병 하나 없이 살아오면서 육남매를 머리털 하나 다친 곳 없이 지금까지 잘 키우고 지켜낸 것 정말 대단하고 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모님는 미국 스태프들이 축하하는 소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직 서너 달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가족들을 향해 연신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만 쏟아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병원 스태프들이 케익과 음식을 양로원 노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겠다고 말한 뒤 곧 바로 장모님이 타신 휠체어를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사태에서 그저 건강하게 잘 버텨 주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손을 흔드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날 이후, 장모님을 간병인에게 물으시더란다. “오늘은 데리러 온대?”. “네, 할머니 걱정 마세요.” 라고 하니 “아이, 좋아라.” 하면서 스르르 눈을 감으시더니 곧 평안한 모습으로 주무시더란다.

문득, 이기철 시인의 ‘네 켤레의 신발’이 생각났다. 흙이 묻는 신발들이 집 한 구석에 놓여있고 조그만 바람에도 소리나는 창문이 있는 낮은 집, 그 방안에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저녁을 먹는 모습이. 아마도 장모님은 당신의 젊은 날 온 가족이 그렇게 둘러앉아 시끌벅적거리며 저녁을 먹던 그 정겨웠던 그 집으로, 저녁을 준비하러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동천/뉴저지 노스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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