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Korean Lives Matter’

2020-06-10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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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는 동양인 쿨리들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쿨리(중국어: 苦力, Coolie)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중국인과 인도인을 중심으로 한 황인종 이민자들을 일컫는 말로, 대륙횡단 철도 공사에 이들이 대규모 동원된 사실이 있다. 이 공사에서 얼마나 많은 쿨리들이 죽었는지 그 숫자는 철도 밑에 깔린 피땀만큼 많았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동서 횡단철도도 갖은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쿨리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희생으로 개통됐다고 한다. 100년 전 한인 이민자들도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하며 삶을 일구어 갔다. 1905년 하와이의 약 60개 농장에서 5,0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욕설과 채찍질을 당하면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한 사실도 있다. 한인들은 적도의 태양 아래 하루 10여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 지냈다.

백인경찰의 강압적 체포로 숨진 흑인청년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국적인 유혈 폭동으로 번지더니 다행히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 폭동으로 LA한인타운에는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방위군 투입으로 시위가 안정되면서 부촌이나 백인 거주지로 시위가 확산되진 않았지만 예외 없이 한인타운은 타겟이 되었다. 미 전역의 약 100개 업소가 폭도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1992년 LA 4.29폭동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다.


흑인을 심하게 구타한 백인 경찰관에 내려진 무죄판결로 당시 흑인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경찰은 백인 거주지인 비버리힐스 주변에 우선 배치됐지만 코리아타운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00년전 백인이 저지른 흑인 노예제도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시대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작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100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동양인들, 특히 바이러스 진원지로 발표된 중국의 우한과 전혀 상관없는 한인들이 미국인들의 차별과 혐오를 당하는 사건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주류언론의 동양인 차별 반대 캠페인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 돼야 가능할까.

동양인 차별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많다. 흑인들은 미국내 범죄율이 아시아계의 20배 이상이고 매우 공격적이며 게으르다. 이들이 유독 아시안을 보면 찢어진 눈을 상징하며 칭챙총 하면서 아시안 차별에 앞장서곤 했다.

한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부지런한 데다, 궂은일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이들이 흑인들에게 질투의 대상이자 만만한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인들은 약탈이나 방화 같은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흑백논리로 끌고 가서는 위험하다는 의견도 많다. 명분은 흑인과 소수민족 전체를 위한 시위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 전국에서 방화 약탈로 피해를 입은 곳은 묵묵히 열심히 살고 있는 이민자 가정들이다. 특히 한인들은 미국 이민생활의 모범생들로 미국의 헌법 가치를 잘 수호하는 민족이다. 이런 선량한 한인들을 흑백갈등에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폭력사태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통해 자신의 첫 번째 임무가 위대한 국가와 미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한인들은 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져왔다. 어느 민족보다 미국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서도 말이다.

미국의 다원주의는 힘없는 아시안에게는 말 뿐이지, 얼마나 허약한 기초 위에 놓여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언제까지 한인은 피해만 볼 것인가. 흑인의 생명만 소중할까. 한인의 생명도, 삶도, 소중하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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