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

2020-06-01 (월)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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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다운 것(Koreaness) 즉 한국인의 특색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을 2세 청년으로부터 받은 일이 있다. 쉬운 것 같아도 어려운 질문이다.

‘울림’이 한국인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퉁소 가야금 장고 등 한국의 악기들이 모두 울림을 주로 한 악기들이다. 이 악기들은 본음도 중요하지만 여음(餘音)도 중요하게 다룬다. 그 이유는 울림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하기야 서양 음악가인 바흐 같은 악성(樂聖)도 “음과 음 사이에 대한 처리가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울림의 중요성을 말하였지만 음과 음 사이의 울림이란 한국적인 것으로 말하면 소위 정(?)이다. 동기간의 정, 이웃간의 정, 모녀의 정, “구름도 쉬어 가는 추풍령 고개”처럼 나그네에게 막걸리 한 대접이라도 먹여 쉬어가게 하는 정으로 우리 한국인의 사회는 맺어져 있다.

지금은 물질문명과 개인주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울림이 많이 깨졌지만 그래도 이 울림은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울림은 중요한 유대관계로 되어있고, “정일랑 두지 말자”고 노래하면서도 역시 한국인의 사랑은 계산보다 정이 앞서며, 가정이나 사회나 울림으로 맺어진다.


성경의 구원사는 동양인의 감각인 ‘울림’으로 볼 때 가장 잘 이해가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신앙이라고 불리는 울림인 것이다. 자기의 욕심대로 집을 떠난 아들을 밤낮 기다리는 아버지와 눈물로 돌아온 아들이 껴안고 함께 눈물로 기뻐하는 예수의 ‘탕자의 비유’가 회개라고 불리는 인간의 울림을 말한다.

한국어의 ‘울림’과 ‘울다’는 같은 어간을 가진 말로서 이런 말을 만든 우리 조상들의 슬기를 보여준다. 초상집에서 곡을 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조문객과 상주 사이의 울림을 나타내는 관습이었다.

한국인의 음식으로 많이 먹는 것이 국수이다. 국수의 맛은 긴데서 온다. 부서진 라면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국수의 맛과 길이가 함수관계에 있음을 잘 알 것이다. 함흥냉면쯤 되면 끊어 지지가 않기 때문에 도중에 숨을 돌이키고 휴식을 취하더라도 일단 시작한 것은 끝장을 내야 맛의 진가를 안다. 콩국수의 구수함, 칼국수의 소박함, 모밀국수의 덤덤함, 냄비국수의 다정함이 우리들에게서 사라진다면 한국인의 진가를 잃게 될 것이다.

한국어에는 애매한 응답을 나타내는 말이 무척 많다. “적당하게”, “비슷하게”, “그런대로”, “대충”등 무수하다. 철저하게 마무리 짓는 책임있는 태도가 개인이나 단체생활에 퍼져있어야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시작은 요란하고 끝은 흐지부지하면 믿음이 안 간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기 힘든 말 중 하나가 “기분”이란 말이다.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는 말도 한다. “기분이다!”고 하는 우리의 애용구는 영어 번약이 불가능하다. 만족을 표현할 때 “기분 좋다.” 불쾌함을 표현할 떼 “기분잡친다.” 재미 보는 것을 “기분낸다.”고 표현한다.

한국인들이 다시 생각해야할 문제점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때만 넘기면 된다는 임시변통 심리, 남이야 어쨌든 자기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현실주의, 현재를 즐기는 쾌락주의, 현실 만족 등은 깊이 생각해야 할 우리들의 문제점들이다.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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