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오월에

2020-05-21 (목) 김명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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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서너 달 동안 내 단톡방과 카카오톡에는 많은 전자 카드들과 비디오들, 좋은 사진들과 사랑의 말씀들이 넘쳐났다. 코로나 19가 주던 불안감이 소셜 미디어가 주는 사랑의 축복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5월에 장미를 드립니다!’는 문구와 함께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서른아홉 개의 장미꽃 바구니들이 ‘오월은 사랑의 달’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했다. 빨강, 분홍, 노랑, 파랑, 갖가지 색깔들이 섞인 장미꽃 바구니가 코로나 19에 대한 걱정을 잊고 미소 짓게 했다. 내 생애동안 이렇게 많은 장미꽃 바구니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나태주 시인의 ‘오월의 아침’ 한 구절이 메마른 내 마음을 봄비처럼 적셔 주기도 했다.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보면 /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 새파랗게 돋아날 것만 같네요’ 인공 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능가한다 해도 작은 것에조차 사랑을 느끼는, 이런 감성에 공감하는 시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날에 올라온 전자 카드와 동영상은 사랑의 절정을 이루었다. 여러 색깔의 장미꽃들이 피어나면서 “Happy Mother’s Day!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배우는 말,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엄마….” 라고 써지는 장미꽃들의 글과 율동과 노래하는 경쾌함.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게 하였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퍼 나르기에 열심인 몇 장의 전자 카드도 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지인이 요즘 한쪽 눈이 보인다며 “매일 볼 수는 없어도 카톡으로나마 안부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며 보내준 카드는 감동스러웠다.
뉴욕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떠난 지인이 보내준 분홍 장미가 그려진 카드 또한 그랬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뉴욕의 코로나 19 사태가 한국보다 더 많이 걱정된다 하였다.
평소에 소셜 미디어와 친하지 않았던 나도 집콕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랑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상대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줄 수 있어야만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사랑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고나 할까.

카카오톡에 올라온 예쁜 카드들, 재미있는 동영상들, 사랑스런 장미꽃들도 다 사랑의 행위라 싶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다보면 읽혀지는 상대의 마음. 통화를 하다보면 목소리에 실려 오는 감정의 빛깔. 그래서 빚어지는 모순들이 사랑의 시냇물로 흐르는 세계가 있는 듯 했다.
그런 사랑에 취하면서도 가슴이 저리고 아파오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오월이 되면 잊으려야 잊히지 않는, 5.18 민주화 운동에 산화해간 목숨들. 한 떨기 꽃잎처럼 스러져간 그들의 영혼에 장미꽃들을 바치며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는 위로의 말밖에 할 수 없는 나는 죄인처럼 비애에 젖고는 한다.

<김명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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