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률 칼럼 - 죽음을 부른 시민체포법

2020-05-20 (수) 손경락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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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3일 조지아 주의 해안도시 브런즈윅(Brunswick)에서 25살의 흑인 청년 아머드 알버리(Ahmaud Arbery)가 조깅을 하던 중 트럭을 타고 뒤쫓아온 검찰조사관 출신 그레고리(Gregory, 64)와 트래비스 맥마이클(Travis Mc Michael, 34) 백인 부자의 총에 맞아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맥마이클 부자는 알버리를 인근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시민체포법에 의거 추격했는데 알버리가 저항했기 때문에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

경찰도 이들의 행동이 시민체포법 범위내에서 이루어진 정당행위로 보고 처음에는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맥마이클 부자의 진술과는 달리 알버리가 맨몸으로 조깅을 하다 아무런 저항도 하기 전에 총을 맞고 죽는 당시의 충격적인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현대판 린칭’이라는 비난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검찰은 사건 발생 74일이 지나서야 이들을 살인혐의로 뒤늦게 체포하고 기소 방침을 밝혔다.

시민체포권(citizen’s arrest)은 중세시절의 영국에서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출동방법이 없어 즉각적인 현장 대처가 불가능한 점을 감안, 일반 시민에게도 범인을 체포할 수 있도록 왕이 권한을 부여한 제도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영국의 전통은 미국에도 그대로 이어져 현재 조지아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에서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경비가 허술한 멕시코 접경지대 중심으로 무장시민 단체들이 이 법에 근거, 불법 월경자들을 체포하고 이들을 이민당국에 넘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민체포 제도는 이런 순기능과 반대로 이번 알버리 사건에서 보듯 아직도 미국내 흑백간 인종차별 앙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기소지마저 자유롭다 보니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발생한다. 이를 풍자하여 법무부 민권국 출신 다나 멀하우저(Dana Mulhauser) 전 검사는 “우리는 공권력 행사가 민간에 맡겨졌던 서부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법은 19세기를 떠나야 한다”고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기도 했다.

시민체포권 남용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2012년 플로리다 주에서 있었던 17살 흑인 고등학생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살인사건이다.
자율방범대장 조지 짐머맨(George Zimmerman)은 동네 순찰을 돌다 후드티셔츠를 입고 걸어가던 낯선 얼굴의 흑인을 주거침입 용의자로 오인하고 추격 끝에 총으로 사살하고 말았다. 트레이본은 당시 맨몸 상태에서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거리를 사서 귀가 중이었을 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백인 5명과 히스패닉 1명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배심원단은 재판을 통해 짐머맨이 총기면허를 갖고 있었고 시민체포법에 의거해 트레이본에게 접근하였으며 플로리다 주의 자기방어법(stand your ground law)에 따라 총으로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짐머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려주었다.
이 평결은 전국적으로 혐오범죄 논란을 불러일으켜 결국 볼티모어와 미주리주 퍼거슨 등지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시민에 의한 체포가 성립되는 법적 구성요건은 각 주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주에서 중범죄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만 정당화되며 경범죄에 대한 체포는 용납하지 않고 있다.
또 시민체포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완력과 무기사용도 허용되지만 만약 범죄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알버리 사건처럼 과잉대처를 한다면 민사적, 형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손경락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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