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시대 대가족

2020-05-06 (수) 여주영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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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살의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 가락지다./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 신록의 달이다./… 신록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밝고 맑고 순결한 5월은 지금 가고 있다./ 시인 피천득이 5월을 주제로 노래한 아름다운 시다.

연중 가장 화려하면서도 푸르름이 가득한 달이 5월이다. 그래서 문인들이 5월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예찬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에는 의미 있는 기념일이 많다. 5일 어린이날, 10일 어머니날, 21일 부부의 날 등이다. 주로 가정과 관련되다 보니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올해 가정의 달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코로나 19의 감염을 막기 위해 앞다투어 강조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심지어 아들, 딸 가족이나 친지들조차도 함께 만나 식사 한번 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 대공황으로 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긴 가정불화가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스트레스'를 이유로 요사이 이혼하는 중국인 부부가 약25% 급증했고, 퀸즈지역의 경우 자살자가 3배나 늘었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가정의 달인데, 가정불화로 인해 소중한 가족과 멀어지는 불상사가 생기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나 무급휴가 직장인들이 늘면서 더 큰 범죄까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모두가 코로나로 집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 한민족의 자랑인 ‘가족주의’와 ‘효 사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뜻밖에 이번 코로나는 가정파탄의 주범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코로나로 무너지는 가정을 일으켜 세울까,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쩌면 답은 대가족제도와 같은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1세대는 대가족의 끈끈한 정을 느끼며 자랐기에 대가족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대가족은 무엇보다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지출이 줄어드는 데다, 가족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자녀 양육문제, 아이들의 경로사상 고취 및 사회적 노인문제 등의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대가족 형태는 일본은 물론, 미국사회에도 늘고 있다. 가족의 힘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로 삼은 것은 이미 역사적 통계에도 나와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리서치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진 2008년, 다세대가 한 가정에서 같이 사는 통계수치가 미국 역사상 최고인 4,900만명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큰 숫자이다.

이제 코로나로 적지 않은 가정에서 대가족의 장점을 살리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가족이 하나가 된다면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이유이다. 가족이야 말로 최상의 사회안전망이 아닌가. 그동안 사람들은 대체로 풍요한 생활 속에서 핵가족으로 분리돼 살았다. 이제는 불확실한 현실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가 되는 것도 생각해 볼 때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타당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대가족 아닐까.

예전에 우리 부모 세대는 가족이 한집에 모여 오손도손 살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난을 이겨내고 집안 살림을 일구었다. 한인사회는 이번에 코로나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곧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자택대피령이 풀리게 되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죽어라 일해야 할 상황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흩어진 가족이 하나가 된다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이번 5월은 코로나 덕에 집집마다 가족의 중요성과 대가족의 의미를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특별한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여주영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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