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복

2020-04-23 (목) 한재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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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아본 새로운 사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몹시 무겁고 힘들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예견된 결과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를 보면 인간의 교만과 과학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이기만을 위해 위태롭게 운영되어 왔다. 무엇인들 우리가 못할 것이 있느냐는 자만심 권력과 돈만 있으면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상대를 인격이나 양심의 대상이 아니라 심지어는 상품취급을 받기도 했다.

19세기의 철학자 니체가 말했듯이 “신은 죽었다”. 신이 필요 없고 무엇이든 자신의 힘으로 다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신을 죽이고 없이도 살 수가 있다는 삶의 철학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도 않은 적인 코로나 19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제는 고사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가? 우리의 힘이나 과학으로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이제야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앞서야 됨을 알았다. 전능자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한시도 세상을 마음 놓고 살수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회복을 기원해야겠다. 어리석음과 잘못된 사고와 삶의 방법을 내려놓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기도한다. 무서운 재난의 끝과 경제적인 어려움에서의 회복이다. 우선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열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를 그치지 않고 있다.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지난날을 돌아보아야겠다. 무엇이 우선인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조금 더 냉철해지자. 우리 스스로가 신이 없어도 살 수가 있다는 신을 스스로 죽인 그 자리에서부터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스스로가 죽든지 아니면 우리가 죽였던지.. 그런데 전능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인 것이다. 그렇다고 신이 죽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머리로만 살아왔던 지난날을 가슴으로 살아보자. 그때 자신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자연이 보이고 함께 사는 삶의 길이 보이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자신이 가진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는 머리의 생각을 가슴으로 느끼는 삶의 모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회귀이다. 내가 과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영구한 삶이 아니다. 너 나에게 주어진 한 가지는 죽음이다. 언제인가 우리는 다 죽는다. 그때 스스로를 가슴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도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사람다워지는 길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경제가 조금만 회복되어도 과거의 길을 다시 걷게 될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느끼며 인간의 본체를 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흙이었다.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왔을 때 인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물질이나 과학이 아니라 전능자와 관계회복이다. 그럴 때 내 곁에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죽음이 와도 아니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더 밝은 현실에 서 있음을 알 것이다. 그것이 바른 회복일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르게 인식하며 살 것인가?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 앞에 설 때 이다. 이 거울은 유리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유리에 검은 액체가 발라질 때 자신을 보이는 거울이 된다. 오늘 같이 앞뒤가 꽉 막혀있을 때 자신 곧 인간의 무능과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음을 알 때이다. 이제 순수한 자신의 속을 보면서 살자. 더 이상 자신의 무덤을 파지 말고 그 무덤에서 떨치고 일어서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한재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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