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 우리절 전경
절간 같다 혹은 절집 같다. 고요함을 뜻하는 이 관용어가 요즘처럼 딱 들어맞은 때가 있었을까. 법회중단 두달째다. 크고작은 모임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연중 가장 큰 불교명절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도 한 달 미뤄졌다. 부처님 시대부터 이어온 안거 또한 한 달가량 늦춰 시작된다. 인적 드문 도량에는 스님 홀로 드리는 염불소리, 바람소리, 풍경소리...
코로나 사태로 거의 모든 것이 ‘동작 그만’ 상태인 지금, 마리나시티 우리절 주지 운월 스님은 남가주에 제2 우리절을 가꾸느라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훨씬 바쁘다.
제2 우리절이 둥지를 튼 곳은 라노(Llano), 남가주 LA 카운티 동부 끝자락 작은 촌락이다. 뒤로는 여태 흰 눈을 덮은 높은 산, 앞으로는 끝없는 모하비 사막, 팜데일(Palmdale)과 빅터빌(Victorville) 사이에 있는 인구 약 1,200명의 농촌형 산촌형 사막형 복합타운이다. 북가주에서는 5번 프리웨이를 타고 베이커스필드 다음 큰 산 너머에서 138번으로 접어들어 동쪽으로 한 시간가량 달리면 닿는다. LA 한인타운에서도 한시간 남짓 걸린다.
△라노 우리절 규모 : 대지 2.5에어커에 아담한 산장식 통나무집이다. 통나무집 허가면적은 300스퀘어피트인데 달아낸 공간을 더하면 약 600스퀘어피트다. 넓고 평평한 마당, 그 가장자리로 줄지어 선 나무와 단정히 괴어진 큰돌 작은돌, 사진만 봐도 매우 깔끔한 삶터다.
△왜 남가주인가 : 운월 스님과 LA권 몇몇 불자들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들은 수시로 대여섯 시간 운전을 마다 않고 우리절을 찾곤 했다. 운월 스님은 이들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곳에 도량을 세우려고 터를 물색해왔다. 사진으로 담아둔 답사지만 일흔 곳이 넘는다.
△마리나 우리절은 어떻게 : 신도가 있는 한 유지할 참이다. 코로나 사태가 걷혀 라노 우리절이 정식 개원되면 운월 스님은 매달 첫째주와 셋째주 법회는 마리나 우리절에서, 둘째주와 넷째주 법회는 라노 우리절에서 주재할 계획이다.
△전 주인 때부터 시작된 우리절 불사(?) : 라노 우리절 마련 비화를 듣노라면 마치 전 주인 때부터 불사가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단정하고 아담한 통나무집과 너른 마당, 정성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돌과 나무, 눈 덮인 뒷산 등, 첫눈에 반한 스님은 주인이 제시한 매각희망가(에이커당 약 8만달러)에서 단 1달러도 깎지 않은 오퍼를 넣었다. 안심은 일렀다. 몇만 달러 웃돈을 주겠다는 경쟁자가 나타났다. 예사거래 같으면 운월 스님은 또 헛물을 켤 판이었다.
그곳에 1년반쯤 살다 도시로 가자는 부인의 성화에 못이겨 애지중지 가꾼 그곳을 내놓은 50대 신사는 운월 스님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이 곳에 와봤는지, 실제로 살 것인지, 이 집을 진정 사랑하는지... 운월 스님의 답을 들은 주인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몇 만 달러 웃돈을 제시한 이는 사전답사도 하지 않은 탓에 부동산 투자자로 비쳐져 탈락한 것 같다고 운월 스님은 짐작했다. 전 주인 부부의 남다름은 이삿날에도 이어졌다. 처음 며칠간 바깥출입 없이도 살 수 있도록 물이며 음료수며 빵이며 비상식량을 정갈하게 준비해놨더란다. 운월 스님은 두 부부를 위해 늘 기도하겠다는 말로 감사를 표했다 한다.
△라노 우리절 미래 청사진 : 당장은 통나무집 안팎을 손봐 부처님 도량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향후 여건이 되면 독채 법당을 지을 계획이다. 2.5에이커 단위 주변 두세필지를 더 구입해 누구나 언제나 들러 예불을 올리고 포행을 하고 편히 쉬는 도량으로 가꿔나가는 한편으로 당귀 등 약재와 갖가지 채소류를 기르는 밭을 일궈 그 결실을 신도들과 함께 나눈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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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