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삶을 찾아서’

2020-03-25 (수)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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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온통 난리통 속이다. 그런데 모든 게 정체상태인 것처럼 온세상의 사람 숨소리마저 죽은 듯 정적에 감싸여 있다. 전율을 느낀다. 살아있음이 기적 같다.

언론매체마다 방송채널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수와 사망자수가 경쟁이라도 하듯 시간을 다퉈가며 발표되고 있고 워싱턴 미국 백악관에서는 매일 트럼프 대통령 일행의 기자회견이 방영되고 있다.

3월 21일자 영국 전염병 연구진의 보고서는 정부와 국민의 노력 없이는 미국의 사망자가 2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미국이 그렇다면 영국은? 그외 다른 국가는 언급이 없고 하필 미국을 들어 그런 섬찍한 발표를 하는 저의는 무엇인지?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전세계에 걸쳐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생긴 기록이 있다. 1912년생이신 나의 부친께서는 당시 여섯 살, 나의 모친께서는 두 살이셨다. 36년간 일제치하를 겪었고 1950년 북괴남침으로 시작된 한국동란도 치렀다.

세간에서 흔히 인명은 재천이라고들 하지만 이 모든 질병, 환란과 전쟁을 치루면서도 아버님은 73세, 어머님은 88세까지 천수를 누리셨다. 1885년생이신 나의 할머님은 82세의 일기까지 병원문 출입을 모르셨고 평안히 주무시다가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필자는 1940년생, 금년으로 만80을 넘기고 있다. 어릴 때 이질 병이 돌았는데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6.25와 1.4후퇴, 9.28 수복당시 거주지인 인천집 지하실에서 사흘간의 미해군 함포사격에도 우리 가족 15명이 모두 살아남았다.

1966년 11월 맹호부대 6제대 장병들과 함께 파월 미해군 병력수송선에 몸을 실었고 1972년 11월 임무를 끝내고 뉴욕 JFK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만6년간 전쟁터에서 활약하다가 손끝 하나 다친데 없이 살아 돌아왔다.

이렇게 장황하게 과문한 사람의 이야기를 피력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고자 함이 아니다. 회고해보면 그 어떤 역경, 여건하에서도 주어진 삶에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부여된 일을 하고 살았다는 거다.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지난겨울은 평생 처음으로 지루하고 적막한 기간을 보낸 느낌이었다.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춘삼월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침공은 얼어붙었던 가슴을 한층 더 썰렁하게 만들었다. ‘내일 세계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스피노자의 글귀를 떠 올려본다. 텃밭농사를 하고 있는지 금년으로 만7년째이다. 밭에, 어서 나가 비료 줄 준비를 해야겠다.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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