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99)제43대 George Walker Bush 대통령(5)

2020-03-23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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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동 Islam 국가들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던중 1990년 8월에 Iraq 의 독재자 Saddam Hussein 은 친미 산유국으로 미국에 석유를 공급해오고 있던 조그만한 나라 Kuwait를 침공하여 Kuwait 의 유전들을 점령하고 석유생산을 중단 하였었다. Bush 41 은 미군을 파병하고 최신의 무기들을 총동원하여 Iraq 군을 Kuwait 에서 철수시켰고 혼비백산한 Iraq 군들은 모두 항복한끝에 Baghdad 로 도망하였었다. Bush 41 은 Hussein 을 추격하지 않아서 Iraq 은 병력의 치명적 손실도 별로없이 전세계 앞에 체면만 손상된 채로 돌아 갔었다. Hussein 을 명분좋게 실각시킬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놓쳐버린 Bush 41 은 이때의 “실수”로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었다.

한편 Hussein 은 “개선장군”이나 되는듯이 Baghdad 로 돌아가서 독재폭정을 더욱 강화하면서 세계 최강국 미국에게 항전하여 승리라도 한것처럼 반미 기세를 한층 더 높혀갔었다. 그는 반미 Islam 국가들의 영도자나 된것처럼 미국에게 도전적인 행세를 계속하였었다. 그는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착각 했었던듯 하다.

반미 중동 Islam 국가들에게 초강경 적대정책을 쓰고 있던 Bush 43 은 계속 기세를 올려대고 있던 Hussein 을 제거함으로써 부친 Bush 41 의 실수를 바로 잡아놓아야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Bush 43 은 자신의 연설을 통하여,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던 Colin Powell 국무장관의 UN 연설등을 이용하여 Iraq 이 UN 과의 약속을 위반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고 있으며 독 gas 와 세균등을 포함한 대량학살무기 (Weapons of Mass Destruction) 을 제조하여 숨겨두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후일 밝혀진바에 의하면 Bush 43 의 이와같은 주장들은 미국과 세계의 여론을 규합하기 위한 허위과장 조작들이 었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때에 Bush 43 의 인기가 많이 올라 갔었으며 Iraq 이 대량학살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Joe Biden 과 Hillary Clinton 등을 포함한 민주당 상원의원들 까지 미군이 Iraq 과의 전쟁에 참전해도 된다는 동의를 하도록 만들었었다.


Bush 43 은 내심 UN 이 개입하고 Iraq 을 응징해 주기를 원하였었다. UN 의 조사단들이 Iraq 에 가서 조사를 하였으나 Bush 43 의 주장들을 확인해줄 증거를 찾지 못하였었다. UN 에서 Bush 43 의 계획에 반대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서 Bush 43 은 UN 을 이용하여 Iraq 을 응징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는것을 깨달았다고 생각된다.

Bush 43 은 4일간 더 조사를 하겠다는 UN 조사단의 요청을 거부하고 조사단이 즉시 Iraq 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했다.

미국은 영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불란서를 포함한 20여개국의 “연합군” 과 함께 2003년 3월에 Iraq 을 침공하여 Hussein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새정권이 수립 되도록 하였다. 전쟁중 생포된 Hussein 은 결국 새 Iraq 정권에 의해 2006년말에 사형되었다. Hussein 이 제거된 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된 Iraq 의 내전으로 Iraq 인 25만명이 사망했는데 그중에 민간인 16만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추산되지만 미국과 중동 반미 Islam 국가들간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에 있다.

Dick Cheney 부통령은 극우 보수적인 인물로써 Bush 43 이 중동외교에서 비타협적 강경정책을 쓰도록 영향을 준 “실세” 부통령 이었었다고 가끔 평가되었었다. 미국은 막강한 무력으로 “소탕”을 해오고 있지만 완전히 “섬멸”되지않고 계속 미국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terrorist 들의 뿌리인 al-Queda 조직과 Iraq 의 조직요원들을 수많이 생포하여서 terrorist 들의 조직과 전략을 알아 내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였었다.

미국은 전쟁포로 처우에 대한 Geneva 협정, UN 의 결의문, 미국 헌법 및 법률, 미국 육군의 규정 등등을 준수 하면서 미국이 꼭 알아야하는 정보를 얻어내는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무자비한 “고문”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있을수가 없다는 “결론”은 누구나 다 알고들 있었다.

그러나 다들 알고있는 “수단”을 얼른 동원하기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다. 미국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후에 독일의 “애국적 Nazis” 들과 일본의 “애국적 군벌”들이 국제법을 위반한 “전범”으로 사형 되었던것을 잘 알고 있다. 또 미국내에서 고문을하면 미국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형사처벌을 받게된다. 육군, 해군등 군대규범에도 고문은 금지되어 있어서 위반자는 군법재판으로 처벌을 받을수가 있다.

미국내에서는 terrorist 요원이라도 “합법적”으로 고문이라는 극단의 수단으로 정보를 얻어내는것은 위법이 되는 것이다. 정보도 받아내고 처벌은 면한채로 무공을 인정받을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 부통령에게 까지 질문이 올라 갔었던듯 하다. Bush 43 정권을 비난하는 일부 사람들은 밑에서 질문이 올라갔다기 보다는 백악관측에서 “명령” 이나 “허가”가 내려 왔었을것 이라고 추측하였었다. CIA 나 국방부의 조사관들이 백악관의 명령이나 최소한 묵인이 없이는 있을수 없는 일들을 감행하였었다.
미국이 포로 심문과정에서 잔학행위를 한다는 규탄을 피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포로들을 친미우방 독재국가들에 보내서 그들의 고문등을 포함한 수사방법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을 썼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였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맹견으로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남존여비”의 전통에 익숙한 포로들이 나체가 된채로 간수들인 미군 여성헌병들의 지시대로 행하여야 하는 모욕도 주었었다. CIA 는 미국이 직접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었었다.


미국 헌법은 미국내에서는 피의자가 미국시민이 아니더라도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인권이 보호되어야 하며 수사과정에서 고문등의 수사방법은 쓰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만일 “미국내에서” 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미국 외에서”는 헌법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할수도 있지 않을가? 철없는 소학생 수준의 법해석이지만 Bush 43 의 정권은 “전쟁중”이라는 구실로 소학생이 되기로 하였었다.

Cuba의 동남단은 미국이 지배하는 미국영토로써 Guantanamo 라는 해군기지가 있다. 만일 이곳에 포로수용소를 건축하고 이곳에서 포로심문을 하고 군법재판을 한다면 “미국내”가 아님으로 헌법에 규정한 기본인권이 보호되지 않아도 된다는 “법리”를 내세울수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미국은 이곳에 Guantanamo Bay Detention Camp 를 설립하였다. 필자가 엄청나게 복잡한 일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자인 하지만 필자의 설명이 근본적으로 틀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 포로심문을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그중에 가장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던 것이 “waterboarding” 이라고 불리우는 “물고문” 이었다. 사실 이 고문방법은 오래전부터 전쟁중에 많이 쓰여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왜정때에 일본 식민 경찰들이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에게 많이 썼었으며 불과 얼마전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쓰여졌던 고문방법이었었다. CIA 의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은 waterboarding 으로 사실상 얻어낸 정보는 별로 없었으면서도 Islamic terrorist 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waterboarding 을 썼었다는 비판도 있었었다.

백악관측의 계속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물고문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 이었었다고 생각된다. 후일 Bush 43 은 만일 그때와 같은 국가위기가 발생한다면 주저없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었다고 한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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